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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정하기

습작을 위하여

by 라면

주제를 정하는 것이 먼저일까.

소재를 정하는 것이 먼저일까.


이번에 소설 작법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소재를 먼저 떠올리면 주제를 정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객관적인 대상이나, 사건의 결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것이 결국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읽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비록 그것이 다분히 주관적인 것일지라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주제를 먼저 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를 테면 내가 평소에 가장 크게 외치고 싶었던 말을 주제로 정하는 것이다. 주제는 보통 한 줄짜리 문장이다. 보통 아포리즘(진리를 간결한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 경구, 격언, 잠언 같은 것들)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삶의 지표가 되어줄 수 있을 만한 멋진 주제를 종이 위에 적어 놓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아낼 수 있을 만한 소재를 찾아 보자.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선 그 전의 삶을 돌아보며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메시지를 주제로 정했다고 하자.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적어 놓고도 그리 멋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으면 죽어 버릴 것만 같은 지독한 상사병에 빠졌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 주제를 구체화해 줄 소재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눈에 힘을 주고 문장을 노려본다. 겉치레와 사건을 도려낸 한 줄 주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그러니 얼른 소재를 떠올려야 한다. 이 위에 덮어줄 옷이 필요하다. 이 따위 주제밖에 생각해 내지 못한 내 작가적 소양에 대한 불신이 고개를 들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포괄적인 소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혼한 남자가 상처를 극복하고 재혼하는 이야기나, 가정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 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비행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 결국 나는 창작 욕구를 잃어버리고 만다. 문장을 적어 놓은 종이를 찢어발기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아 내고, 또 다른 번뜩이는 영감이 날 찾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역시, 소재를 먼저 정하는 것이 좀 더 적합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최근 관심이 생긴 소재가 있다. 사실 최근까지는 아니고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있는 분야라고나 할까. 어릴 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 같은 곳에서 종종 들어본 적 있는 '세피로트의 나무'가 그것이다. 어릴 때는 그냥 멋진 단어라고만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 어디선가 그 단어를 다시 한번 들었을 때, 대체 세피로트는 무엇이며, 나무는 또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세피로트의 나무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나무'위키에 들어가 보았다. 오컬트적인 그림이 먼저 눈에 띈다. 호기심이 더 증폭되는 기분이었다.


'세피로트의 나무는 유대교의 신비주의 종파인 카발라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도식이다. 이 도식은 인간의 수양 과정에서부터 만물의 상호작용, 우주의 창조까지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오컬트 분야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이 뛸 만한 설명이었다. 열 개의 세피라와 스물두 개의 경로로 이루어진 세피로트의 나무는 인간이 속한 말쿠트의 세피라로부터 창조의 근원인 케테르 세피라를 연결하는 나무의 형상으로 도식화된 문양이었다. 뭇 작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만한 요소가 모두 포함된 소재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세피로트, 세피로트의 나무, 케테르 같은 뜻도 모르면서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단어들이 자주 들려왔던 거겠지.


이후에도 세피로트의 나무에 대한 정보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 보았다. 이제는 열 개의 세피라가 무엇인지 욀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윗 단계 세피라 케테르부터 호크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 네차흐, 호드, 예소드, 그리고 말쿠트. 게임이나 만화 같은 이차 창작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명칭들이라 더 쉽게 외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피로트의 나무를 찾아보는 이유는 역시 이 매혹적인 오컬트 소재로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소재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전하고 싶은지까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아마 주제는 소재에 비해 초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신비주의자들과 작가들의 이목을 끈 소재는 그 끈질긴 생명력이 곧 위대과 아름다움의 방증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삶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


니체(신은 죽었다.)나 스피노자(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의 아포리즘 같은 수백 년을 살아갈 문장을 생각해 낼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저조함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오늘도 내 노트엔 여러 문장들이 쌓여간다. 소재와 주제에 관한 생각들. 그리고 단편적인 사건의 플롯 같은 것들 말이다. 쌓이고 쌓인 이 사념들이 어떤 암석이 될진 모르겠다. 적어도 꾸준히 눌러주고, 열기를 가해주면 다이아몬드는 못 되더라도 단단한 무언가가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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