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연습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이유는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 과정을 매일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어딘가에 내가 이러한 글들을 쓴다고 알리지 않은 채, 혼자 기록만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이 작업이 끊길 것을 염려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며,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주길 원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될 줄은 몰랐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심심해서 브런치에 접속해 보았는데, 전과는 ui 배치가 좀 다른 느낌이 들어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 보면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 내가 글로써 이뤄 낸 가장 첫 번째 성과가 된 셈이다.
글을 쓰는 작업은 지독히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써야 한다. 물리적인 격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과거를 혼자 음미하고, 주변에서 얻은 수많은 자극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사고 작용에서 드문드문 타인과의 추억 같은 것들이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글 쓰는 작업의 부산물로 되새기게 되는 타인의 존재란 결코 신뢰할 수 없는 배경에 불과하다. 나의 자의에 의해 적당히 편집된 얼굴과 몸짓 목소리와 사건의 줄거리. 정말 그것이 실존했는가, 아니면 그저 내 기억의 오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마저 의심되는 허상이다. 그래서 오롯이 홀로 글을 쓰다 보면, 세상에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때마다 즐거워서 시작한 글쓰기가 고통스러운 것이 되곤 한다. 가끔은 그 고독과 고통 때문에 내가 읽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부정적인 문장들로 가득 찬 글이 써지기도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정도로 어두운 사람이 아니다. 내 글은 나를 담아야 하는데, 글을 쓰는 것이 나를 변하게 한다면 그것은 곧 일종의 자학 행위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통을 하고 싶었다. 이전에는 내가 쓴 글을 죽어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글을 평가받는 것이 두렵기 그지없었다. 꽤 오랫동안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면서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자라났다. 누군가 내 글이 재미없다고 솔직히 피드백해 주었을 때, 나는 바닥 모를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것이 뻔했다.
그래서 보여주지 않았다. 비겁하면서도 안쓰러운 과거의 나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주고 싶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과거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오롯이 만끽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어떤 편법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항상 내 꿈은 작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작가지망생이라는 말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 말이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쓴 글을 보여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당연하고 예상 가능한 반응이다. 그들이 그걸 원할 줄 알면서도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돌이켜 보면 모순되는 행동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내가 쓴 습작들을 자신 있게 보여줄 만큼 용감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브런치라는 창구를 통해 매일 내가 쓰고 있는 생각 뭉치들을 내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 행위의 반복이 내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줄 거라고 믿으며. 꾸준히 그러고 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적 있었다. 그때는 다른 글들로 심사를 요청했다. 직접 그린 그림에 짤막한 시를 적어 놓은 이미지 파일을 업로드하고 작가 심사를 요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번 시험 삼아 신청해 본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 오랫동안 내 글이 어떤 공모전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때의 기억이 종종 떠오르며,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신청할 때는 힘을 뺐다. 솔직하게, 담담하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감정들과 하고 있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글 몇 편을 업로드하고 작가 신청을 했다. 세상이 이런 글이라면 소통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의미로, 내게 감히 브런치 작가라는 자격을 허락했다. 덕분에 이곳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지는 않는다. 내 글의 독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들이다. 그것도 얼마 안되는 수다.
그들이 내 글을 읽는 이유는 내 글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애정 때문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뭐 어때. 긍정적으로 보자면. 나는 여전히 아직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힘을 빼자.
나는 작문을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집착이 내 정신을 어둡게 물들여 버리기 전에. 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 이 길에. 적지만 누군가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글을 쓰는 나는 외롭지만. 고독 속에 누군가 숨겨 놓은 씨앗을 볼 수 있는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