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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일기를 써 볼까.

by 라면

고향의 겨울은 별로 춥지 않다. 적당한 추위에 단점이 있다면, 여간해선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 며칠 눈 대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내리다 말다 하는 비 때문에 출근할 때마다 우산을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분간 고민하게 된다. 우산을 갖고 출근하면, 비가 내리지 않고, 우산을 가지지 않고 출근하면 비는 내린다. 딱 머피의 법칙대로다. 하지만 다행히도 퇴근할 때 맞는 비 역시 머리카락을 조금 적실 정도일 뿐이다.


도로와 건물 외벽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타이어가 도로를 긁는 소리가 더 짙게 들려온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내게 비가 오는지 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며칠 내리는 비는 알게 모르게 내 기분까지 적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타이어의 마찰음을 들으며, 겨울에도 눈 대신 비가 내리는 도시의 수채화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 물감 없는 그림 그리기 역시 매일 이어지는 작문 연습의 일환이다. 내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을 썼다 지운다 한다. 그나마 참신하다고 느껴지는 표현들은 줄도 그어본다. 그러나 이내 다시 지운다. 창밖에 내리는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것처럼. 그래, 이 썼다 지우다 하는 과정 역시 비 내리는 장면을 그려내기 위한 표현에도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기 몇 시간 전, 어떤 유튜브 댓글을 읽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강한 것이다.'


그 한 문장이 마음에 불을 지폈다. 억지로라도 오늘치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엔 비 내리는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써 보려 했다. 그러나 도무지 몇 줄 이상 써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일기를 써 보기로 했다. 또 다른 유튜브 댓글을 하나 떠올려서였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는 댓글에 달린 채널 주인의 '매일 꾸준히 글을 써 보세요. 일기를 쓰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라는 답글이었다.


그래, 그럼 나도 매일 일기를 써 보자. 가벼운 마음은 더 큰 계획으로까지 불어났다. 그 유튜브 댓글을 본 것은 사실 일주일 전이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다.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나는 매일 꾸준히 쓰는 글이 따로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브런치에 쓰는 글 외에도 따로 소설 습작을 하고 있다. 소설 작법서의 친절한 지시에 따라, 소재를 정하고 주제를 정하고, 그에 따른 플롯을 짠 다음에. 하루 일정량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루틴을 형성하고 되든 안 되든, 짜 놓은 플롯에 맞춰 우선 초고를 완성한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이지만 거기까지는 나름 해낼 수 있다. 그 루틴을 일 년 넘게 유지해 오고 있다. 문제는 그 후이다. 모든 작법서는 퇴고의 과정이 가장 중요함을 말한다. 내가 써 놓은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보면서 그 안에서 어떤 문장을 삭제하고, 어떤 문장을 추가할지. 사건의 구성은 어떻게 변화를 줄지 결정하는 일은 초고를 작성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백지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은 아니지만, 더 곤란한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퇴고란 내가 쓴 글을,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성문화된 나의 자아 일부를 가다듬는 작업이다. 과정은 말 그대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어떤 날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내 분신을 내려다보며 흐뭇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흉측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글을 내려다보며,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매일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중심점을 잡고 그것을 기준으로 솎아낼 것들과 남겨둘 것을 골라내야 한다. 보통은 주제를 퇴고 과정의 중심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중심점을 잡아둔 후에 글을 다시 읽어 봐도 여전히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어제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 오늘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문장을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읽어보면 그런대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제와 상관없는 문장들을 미련 없이 잘라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주제와 상관없는 문장을 구별해 낼 만한 눈이 아직 떠지지 않았다. 내 문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한 어떤 심지가 아직 자리잡지 않았다. 그래서 퇴고는 아직 어렵고 낯설다.


퇴고 과정 중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퇴고 역시 창작 과정의 일부이므로, 나는 이 퇴고의 과정 중에는 웬만하면 새로운 습작 소설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퇴고는 하루에 몇 자를 써냈다는 식으로 그날 작문 연습의 성과를 수치화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그날 퇴고를 했다는 사실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그것으로 인해 내 불안은 증폭된다. 퇴고를 시작한 지 이틀째. 그런 불안의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비는 또 내린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먼 데서 타이어가 도로를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을 적시는 단조로운 음악이다.


움직이자. 뭐라도 하자. 유튜브 댓글대로 매일 일기 쓰기를 지금 시작하자.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재능 있는 자가 소설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소설가가 될 때까지 버티는 자가 재능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장을 대치시킨다. 버티는 힘은 루틴에서 나온다. 구상에서 초고 작성까지의 과정은 루틴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나름 잘 지키고 있으니, 이제 그 후로 퇴고의 과정과 함께 매일 일기 쓰기를 루틴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가볍게 일기를 써 볼까 하는 생각이 결국 루틴을 만들어 보자는 원대한 계획에까지 이르게 된다.


일기는 그날 했던 경험, 혹은 그날의 감상을 자유롭게 쓴 글이다. 그러니 이 글이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내 생각을 눌러 적은 것에 불과하다 해도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일기를 쓰는 것이 그리 익숙지 않다. 이전 브런치에 쓴 글 역시 일기의 일종이라 여기고 쓰긴 했으나, 다시 읽어보면 그냥 평범한 넋두리처럼 읽힐 뿐이다. 오늘 역시 나는 넋두리를 길게 늘여 적는 연습을 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 일기는 한편으로 완성되는 단편 소설이 아니다. 쌓이고 쌓여 끝끝내는 아름다워지고 마는 대하소설이다. 그러니 한 편쯤은 이런, 주인공의 속마음을 해부하듯 들여다본 글이 끼여 있어도 되겠지.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나의 도시에서.

축축한 콘크리트처럼 젖어드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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