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 전부터 부쩍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 칸트, 비트겐슈타인, 데카르트의 생각이 난데없이 궁금해져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전까지 철학=개똥철학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이런 바람이 갑자기 불어온 이유는 아마 그 당시 겪고 있던 내외부적인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책을 읽어 볼지 고민하다, 몇 권의 책을 구매했다.
첫 번째 읽은 책은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저자가 가공해서 엮은 2차 창작물이었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인터넷 서점으로 구매해 직장 점심시간마다 틈틈이 읽었다. 좋은 책이었다. 각 철학자들의 가장 핵심 사상이라 여겨지는 부분을 꼽아 소개하는 책이었으므로, 나는 한 권의 책만으로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오히려 더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 읽은 책은 누군가에게 선물했다. 신입인 내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업무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던 선배님께 선물로 드렸다. 그분은 잘 읽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눈이 나빠져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게 될 테니, 지금 많이 읽어 두는 게 좋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시력이 0.1이었다고, 지금은 라식도 라섹도 불가능한 초고도근시에, 초고도난시이므로 책을 읽기 힘든 느낌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책은 다른 이에게 가고, 남은 것은 인터넷 서점에서 도서 구매 기념으로 증정한 작은 박스만 남아 있다. 그 안엔 동전과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다 남은 나사, 고무마개가 들어 있다. 흔들 때마다 짤그랑 소리가 나는 그 박스는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그다음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갈증을 채우기 위해, 철학자가 쓴 원문 그대로를 읽어 보고 싶었다. 물론,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한국어로 번역된 니체의 말들이 그가 하고자 했던 말 그대로를 옮겨 적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책 중에는 그나마 가장 니체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했다. 박스를 열고 책을 꺼냈을 때,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이 책을 읽었다. 그때는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상징에서 시작해 상징으로 끝나는 이 글을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재미도 없었기 때문에 반도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책이었다. 의욕이 샘솟았다. 이번에야말로 그 유명한 니체가 무슨 말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확실히 이해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직장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 여유 시간에 책을 읽었다.
그때보다는 쉽게 읽혔다. 나름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아포리즘 '신은 죽었다'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 차라투스트라는 긴 수양의 시간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을 만나며 그의 사상을 전파하려 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진실로 깨우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소수의 몇몇 이들만이 다시 은거한 차라투스트를 찾아 와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동굴에 기거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교류한다. 시적인 대화를 통해서. 차라투스트라는 하지만 결국 그들마저 떠난다.
니체의 사상은 그가 살던 시대에 팽배하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던 의지였다.
신은 죽었다.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 유일신 사상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인류를 비추기 시작한 계몽의 빛 때문에, 급속도로 저물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생명과 삶의 의미를 종교적 절대자로부터 구하던 인간들은 신과 성경의 존재에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계몽주의 철학과 실증주의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된다.
공허와 권태에 빠진 인간들은 비술에 빠지거나, 쾌락에 탐닉하게 된다. 이때 니체는 신이 떠난 자리를 인간으로 채우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되, 인간을 초월한 자, 초인이 되기를 이 책에서는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한다. 초인이 되기 위하여는 신, 혹은 종교적 교리로 대표되는 기존 사상과 가치를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은 더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부수고 초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의 허무주의는 적극적인 허무주의다. 허무주의로 인해 공허와 권태를 느낀 인간만이 자신을 초월할 원동력을 느끼고,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