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모드

by 고은별

우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준모드에 도착했다. 박자씨의 고향이기도 한 준모드는 우리나라 군 단위 정도의 작은 도시다.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민과 눈을 마주치면 실례일까 싶어 힐끔 보다 시선을 옮겼다. 박자씨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어색해하는 우리는 영락없는 이방인이었다. 네모 반듯하고 어쩐지 투박하게 생긴 건물들을 지나쳐 준모드에서 나름 규모가 있다는 마트에 들어갔다. ‘몽골여행의 시작은 장보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첫날 장을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원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큰 마트를 방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며칠간 먹고 사용할 것들을 한 번에 구매해야 했다.


같은 시기 떠난 다른 팀들은 장보기 타임에 성의를 다해 저녁 식사에 힘을 주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일행 중 누구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몽골의 식재료나 생필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온 사람도 있을 리 없었다. 다들 마트를 어슬렁 거리며 물건을 들었다 놨다 했다. 6인을 일주일 간 먹여 살릴 식량치고는 참으로 간소한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나왔다. 마트보다는 그 옆의 씨유가 더 흥미로웠다. 몽골에는 GS25, CU와 같은 한국의 유명 브랜드 편의점이 대거 입점해 있었다. 판매하는 물품과 분위기 모두 한국의 것과 같아 놀라웠다. 과자 봉지에 쨍하게 반사되는 LED조명이라든지, 가벼우면서 앉았을 때 은근 편안한 플라스틱 편의점 의자 같은 것들이 그랬다.


마트에 진열된 과일 같은 신선식품 따위보다 회사별로 다르게 포장지를 낸 가공식품들을 구경하는 것이 왜 이렇게도 사람을 들뜨게 하는지. 한국 제품들 사이에서 몽골 간식들을 골라 잡아 비닐봉지를 팔목에 달랑달랑 끼고 기쁜 표정으로 차로 돌아왔다. 차 시트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고 박자씨가 하나씩 먹으라고 사 준 레트로트 효소르를 집어 들었다. 효소르는 고기 소가 들어간 납작한 튀긴 만두다. 분명 전문점에서 먹으면 이렇게 너무 얇거나 흐물거리지 않을 텐데… 생긴 것과 다르게 입에 맞아 자꾸만 먹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편의점으로 치면 씨유의 매콤순살넓적다리나 빅도그숯불갈비 위치쯤 되는 것 같았다. 국민간식을 편의점에서 파는 것을 생각하면 야채호빵, 피자호빵 같은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장도 봤으니 첫번째 여행지 ’Baga Gazariin Chuluu’(바가 가즈린 촐로)로 향했다. 준모드에서 5시간 정도 이동해야 했다. 푸르공은 무거운 24인치 캐리어들과 빈약한 식량을 싣고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푸르공을 타는 것은 재미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으로 의자가 3개는 순방향으로, 3개는 역방향으로 놓여있어서 일행과 식탁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하듯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삶의 터전에서 인천공항 그리고 이국 땅까지 움직이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표지판을 구경하거나 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다.



차는 가끔 유목민 게르에 멈춰 섰다. 박자씨와 기사님은 친밀하게 집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리는 눈치껏 쉬는 시간임을 알아채고 차에서 내렸다. 앉은 자세로 굳어있던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주변을 탐색했다. 유목민 게르에는 대부분 커다란 개가 있었는데 크기는 삽살개보다 크고 얼굴 생김새는 리트리버를 닮았다. 덩치가 대단해 두 발로 서면 성인 키만 한 개들이다. 게르에 가족이 아닌 낯선 이가 오면 주인보다 먼저 동태를 살피는 것을 보니 똑똑한 것 같았다. 몽골의 개들은 주인을 늑대와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납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무는 개는 빨간색 스카프를 묶어둔다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순해 보이는 개들인데도 박자씨는 항상 “개 위험해요. 뒤로 물러나세요. “ 하고 우릴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셨다.


게르에는 개 말고도 어린이들도 있었다. 외지인을 구경하러 나온 어린이들이 두더지처럼 게르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넣었다 했다. 볼이 붉은 어린이들이 낯을 가리자 박자씨는 마트에서 사 온 사탕 한 봉지를 꺼냈다. “요만큼은 우리도 먹고, 이거는 저 아기 가져다주세요.” 나는 제일 큰 언니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에게 “센베노!”(안녕하세요.), “세노!”(안녕!) 하며 슬쩍 다가갔다. 사탕을 보여주고 작은 손바닥에 흘리지 않게 쥐어주었다. 센베노, 인사말에 반응하지 않던 여자 어린이는 우리가 떠날 때 사탕을 꼭 쥔 채 손을 흔들어주었다.


멀어지는 게르를 바라보다 박자씨에게 “아까 그 게르에 사는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물었다. 박자씨는 조수석에 늘어지듯 앉아 일정을 뒤적거리더니 “아뇨,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 살갑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최소 먼 친척은 될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란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기사님도 몽골 길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길을 묻기 위해서 종종 게르에 방문한 것이라고 한다. 공항에서 본 아침해는 벌써 정수리를 지나친 지 오래였다. 낡은 푸르공이 네비게이션 없이 푸르르 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괜히 수상하게 기사님은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밤이 올 텐데. 우리 괜찮을까? 머릿속에 비상등이 반짝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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