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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Jan 19. 2024

책육아라는 그 달콤한 유혹

글 - MBTI 결과지

꼬물이 어린 아기들을 키우다 보면 다들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는 이웃집 엄마들의 망언이 그렇게 솔깃할 수가 없다.

첫 아이에 대한 로망과 환상은 가히 SF판타지소설 급이다.

지금은 자유인 그 자체인 10살인 망아지이지만

피부도 생각도 지금보다 더 투명했던 첫째의 영유아기 시절

돌 전에 걷고 두 돌 전에 문장으로 말하는 첫째를 보며 내 눈이 해까닥 했던 시절이 있었다.


출산 전 웬만한 육아서적은 섭렵했던 의욕 충만했던 나.

첫째의 언어폭발기 때 운명처럼 도서관에서 만난 책육아 서적.

그래 바로 이거야하며 책육아란 신교도에 빠져버려 TV를 해지하고 TV벽면에 책장을 즐비 세우고

중고책을 구하러 중고마켓, 당근나라 단골이 되어버린 나는 주말마다 동네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유모차에 10킬로가 넘는 첫째와 유모차 바구니엔 대여한 20권 넘는 책을 꾸역꾸역 담아

하필이면 평지가 아닌 도서관 오르막길을 한 여름에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땀이 한 바가지가 났다.

거실에 장난감을 치우고 책으로 도배 그것도 모자라 발에 치이면 읽으라고 책을 바닥에 뿌리질 않나

저녁에 애 안 재우고 잠자리 독서시간이라고 침대맡에 책을 수십 권 쌓아놓고 첫째를 무릎에 앉혀놓고

목이 쉴 때까지 읽어주고 또 읽어줬다.

지금 와서도 신기한 게 그때의 첫째는 책육아에 나름 잘 따라왔었다.

영어책을 읽어주면 알파벳도 모르는데 통으로 외워 읽기도 했다.

하루는 잠자리독서 시간 때 내 눈이 거뭇거뭇 감기는 날이었다.

이건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이다 싶을 정도로 졸려서 오늘은 그만 자자 내일 읽어줄게 하면

쌓여있는 책 다 읽어주라고 첫째는 밤에 목놓아 울어재꼈다.

그럴 때면 애가 책을 읽어달라는데 어미라는 자가 피곤하다고 그만하라고 처자버리다니 하고 다음날 나를 자책하고 그랬다.

그랬던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변했다.

적어도 어린이집 다닐 때까지는 밥 먹을 때나 잠자기 전에는 책을 읽고 주말 도서관 나들이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입학 후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준 순간 몇 년 간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도 못하는 유튜버계정을 만들어 쇼츠, 틱톡, 유튜브를 찍질 않나 밥 먹을 때 봤던 책은 닌텐도로 대치됐다.

동물의 숲, 로블록스,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는 첫째

도서관에 귀찮아서 안 간다는 첫째를 겨우 꼬셔 데리고 가면 빌려보는 책은 죄다 학습 만화책.

나의 그 잠 못 들던 수많은 밤들과 쉰 목소리가 억울해서라도 첫째를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받았던 MBTI 결과지를 보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 ENFP 자녀의 경우 >

1. 놀기를 매우 매우 좋아한다.
2. 공부에 관심이 많을 경우에는 전교 1등 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관심이 없을 경우에는 죽어도 안 한다.
3.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긴다.
4. 간혹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으며 가족에게 성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5. 외향형이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괜찮아하는 편이다.


내 자식이 공부에 재주가 있는가 하는 그 싹을 보일 때는 초등학교 때란다. 

똥도 이뻐 보이고 옹알이도 해석이 다 되는 뭘 해도 예쁘고 기특한 영유아기 때가 아니라 지금인 것이다.

지금은 첫째 딸이 천재가 아닐까라는 망상은 더 이상 하질 않는다.

ENFP에서도 외향형 97% (내향형 3%) 결과지가 나온 극외향형 첫째 딸.

더워도 추워도 비 와도 눈 와도 미친 망아지 마냥 날뛰는 자유 영혼 첫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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