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4 수

2학년 2학기

by Chris Paik 백결

오늘 하루는 모든 게 애매했다.

우선 학급 부스부터 말하자면,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 공포 테마에 맞춰 최선을 다해 반을 무섭게 꾸미고 귀신 분장도 열심히 준비하고 갑툭튀로 놀라게 하는 것도 연습했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부스가 운영되는 두 시간 동안 우리 반에서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센 척하는 고3 형님들이 귀신 알바를 보고 소리 지르면서 뛰쳐나가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내가 귀신 알바로 직접 학생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지만, 부스 구성부터 방탈출, 인테리어, 연출까지 거의 전부 기획을 맡은 기획자로서 뿌듯한 순간들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타격감이 좋았던 건 여리여리한 1학년 여학생들이었는데 걔들이 우리가 설계한 점프스케어에 놀라 자지러질 때마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열 팀이 넘는 팀 중 탈출에 성공한 팀은 겨우 한 팀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문제를 짤 때 학생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탓일까? 난도를 낮추고 낮춰 엄청 쉽게 냈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문제를 풀기는커녕 문제가 어딨는지 찾는 것도 못 했다. 문제를 꽁꽁 숨겨둔 것도 아니었다. 칠판에 문제를 자석으로 붙여놓고 칠판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니 학생들은 아무 의미 없이 부스 꾸미는 용으로 써놓은 한자 혼백이탈(魂魄離脫)에만 정신이 팔려서 시간을 대량으로 낭비하는가 하면 문제를 찾았다 해도 풀지를 못하고 뭐야뭐야만 반복하다가 제한 시간이 끝나는 불상사가 계속 반복됐다.

댄스 공연도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다행히 틀린 건 없다. 엄청 걱정했던 대형이랑 어려워서 잘 안 맞았던 ‘눈을 깜빡일 시간이야 베이베~’ 부분 안무를 실수 없이 잘 해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로 내려오는 동안은 좀 행복했다. 아침 7시에 최종 연습을 하기로 해놓고 승현이가 아프다고 아예 안 나와서 엄청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실수 없이 잘 끝냈다고 생각했다. 근데 끝나고 친구들에게 영상을 받아보니 무대가… 뭐랄까, 틀린 건 없는데 임팩트도 없고 기대했던 느낌도 못 살린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 말고 다른 댄스팀들이 비교되게 너무 잘해서 약간 묻히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성공적으로 무대를 완성한 것만으로 난 만족한다. 여자애들 다섯 명이 뉴진스 춤을 추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걔네가 췄던 뉴진스 노래 중에 내가 중3 때 송탄중에서 공연했던 곡도 있어서 옛날 생각도 났다. 뉴진스가 소속사 분쟁 관련해서 활동도 없고 지금 약간 정체기다. 그동안 O.O 댄스를 연습하면서 엔믹스를 좀 많이 파긴 했는데 역시 근본은 뉴진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뉴진스 데뷔할 때부터 Attention 뮤비로 입덕한 나름 뿌리 깊은(?) 팬으로서, 뉴진스의 끝이 이런 식이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빨리 돌아와 줘.

훌쩍 커버렸어

함께한 기억처럼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기다렸지 all this time

전체적인 축제 공연도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 1부, 2부, 3부로 나뉘어 공연이 있었는데 텐션이 올라온 1부는 무대도 재밌었고 흥도 올라 있어서 충분히 즐겼다(우리 공연이 1부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근데 이게 점점 루즈해지기 시작하더니 2부, 3부 들어서는 학생들 텐션도 많이 떨어지고 허리도 아파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었다. 기억에 남는 무대라 하면 위하여, 노이즈 팀, 좋니, 뉴진스, 연극부 정도가 있겠다. 그중에서도 연극부 공연이 특히 좋았다. 로맨스 장르인데 그 남주가 내 친구 채호여서 더 재밌었다. 끝나고 채호가 포함된 단체 dm방은 저녁까지 불탄 건 안 비밀.

학급 부스 장려상도 탔다. 우리 2학년 4반은 소심하고 참여율도 저조한데다 팀워크도 잘 안 맞아서 2학년 열 학급 사이에서 두각을 잘 드러내지 못해왔다. 하지만 지난번 한글날 행사에서 1등이라는 성적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연말이 되니 늦게서야 우리 반이 얼추 합이 맞기 시작했다. 어제 하루 종일 열심히 꾸민 부스가 오늘 12시가 되자마자 10분 만에 해체된 건 속상했지만 뭐든 끝이 있어야 여운도 진하게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끝나고 승현이랑 집까지 걸어갔다. 진짜 힘들었다. 다리가 아파서 길가에 드러누워 한숨 자고 싶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로 했다.

어쩌면 마지막 축제일지 모르는 오늘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모든 축제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엔 뭔가 허무했다. 날씨가 더 추웠던 것 같다. 이제 겨우 2학년을 마무리하는 것이고 아직 방학식은 일주일이나 더 남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추억들을 일찍 정리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고3이 되면 추억 쌓을 새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아쉬운 기분이 바로 연말 분위기의 본질이다. 나의 학창 시절을 슬슬 마무리할까 한다. 고3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학창 시절을 떠올렸을 때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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