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2학기
아침부터 선생님을 울려버렸다. 이벤트가 제대로 통한 것이었다. 풍선으로 꾸며진 교실, 촛불 꽂힌 케이크(4반이라서 초 4개), 롤링 페이퍼까지 예상치 못 한 3연타에 감격하셨나 보다. 있어야 할 건 없고(재미), 없어야 할 건 많았던(문제) 얼렁뚱땅 4반의 마무리가 생각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점에서 나도 기뻤다.
2학년 4반을 마무리하며, 나는 1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던가? 1년 전에 비해 목표에 더 가까워졌나? 많은 걸 되돌아보게 됐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노력과, 내가 흘린 피땀을 잊지 말고 3학년 때는 더 열심히 나아가자는 멋진 생각을 하긴 개뿔 걍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호성이, 재현이, 승현이랑 5반에서 수다를 떨었다. 재현이랑 칠판에 직접 그려가며 체스를 뒀는데 내가 졌다. 호성이가 필리핀에 갔다 와서 말린 망고를 선물로 줬는데 겉보기엔 양이 별로 많지 않으나 먹어도 먹어도 양이 안 주는 게, 어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계속 봉지 안으로 망고를 무한 리필 해주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대포장으로 말이 많은 한국의 과자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맛도 좋았다.
점심으로는 청년다방에 갔으나,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탓에, 많이는 안 먹었고, 재현이, 호성이랑 단어 맞추기 게임을 했다. 그냥 간단히 제시어를 설명하는 단어들로 한 명이 그 제시어를 맞추는 게임인데, 이런 간단하고 유치한 게임도 분위기 속에 녹아들면 재밌는 게임이 된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은 주토피아 2를 보러 갔는데 나는 혼자 나와 미용실에 갔다. 곧 윈터스쿨에 입소하니 머리를 짧게 잘랐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잘라본 적 없는 짧은 길이에 미용실 사장님의 거침 없는 가위질이 거듭될 때마다 잘려 나가는 머리 무게에 반비례하여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다 깎고 나니 이게 웬걸 좋았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자꾸 기침하는 걸 윈터스쿨 가기 전에 끊어야 해서 병원에 가 약을 처방받아왔다.
잘한 것도 아쉬운 것도 다 있었지만 그게 다 내 2학년이었던 것 같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는 점에서는 나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괜찮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3학년이 온다니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로 한 발씩 가보고 싶다.
나 이제 진짜 고3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