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14 수

2학년 겨울방학

by Chris Paik 백결

윈터스쿨 5일 차.

원래 하루 세 번 먹을 약을 챙겨와야 하는데 어제 깜빡하고 오늘치 약 소분을 안 해둔 탓에 먹을 약을 못 가져왔다. 어제는 깜빡하고 물통을 놓고 와서 약 먹는 게 힘들었는데 오늘은 물통을 챙겼더니 약을 놓고 왔다. 비타민도 안 갖고 왔는데….

수이 샘의 확통 수업이 분반되어 시간표가 바뀌었다. 원래는 월, 수 5교시였는데 오늘부터 수, 목 각각 1교시, 5교시다. 과목 하나 당 일주일에 수업이 두 번인데 월요일에 확통 들고 수업이 분반되어 수, 목으로 시간표가 재조정된 탓에 이번 주는 확통 수업이 세 번이다. 뭐, 나쁠 건 없다.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그냥 뒤에 앉아서 가만히 수업 듣는 게 에너지 소모가 덜하고 잡생각도 줄일 수 있다. 여담으로 오늘 수이 샘이 수업 도중 예시로 어몽어스 얘기를 하셨는데 임포스터라고 안 하시고 자꾸 임모탄이라고 하셔서 좀 웃겼다. 매드맥스 애청자이신가

생윤 수업도 원래 더 안 들으려고 했는데 이제 그냥 들어야겠다. 윈터스쿨에 와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흘려보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내가 좀 싫긴 한데, 현재의 울컥한 감정 상태가 지속되는 한 여기에 더 있는 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퇴소하는 날까지 버텨야 하는 문제다.

여기서 너무 부정적인 생각만 하니까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만 같아서 윈터스쿨의 장점을 생각해보기로 했다(말했듯이 이곳에서는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더 크다). 우선 제일 눈에 띄는 장점이라 한다면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규칙적인 생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기, 패스트푸드나 불량식품이 없고 균형 잡힌 식단 등 윈터스쿨에서 제일 득을 보고 있는 놈은 바로 내 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장시간 앉아있느라 목과 허리, 엉덩이가 동시에 아작이 날 것 같기는 해도 이 정도는 뭐 K-고3의 숙명이라고 해두자.

말 그대로 갓생을 사는 중인 거다(과도한 강제성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꿈도 못 꿀 일과를 보내고 있다. 아 그래서 이렇게 힘든 건가?

일과가 끝나면 숙소에서 단 10분 만이라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에게 매일 전화할 텐데.

오랜만에 화장실에서 대변을 봤다. 비데가 끝나서 변기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비데가 힝 속았지? 하더니 물을 계속 쏴서 바지 엉덩이 부분이 다 젖었다. 자습실에 다시 앉았는데 엉덩이가 축축해서 으 불쾌하다. 오늘 아침엔 집중이 잘 된다 싶었는데…, 하….

감정 체계가 완전히 망가져 하루 동안 울다 그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7교시였나 8교시였나 갑자기 또 눈물이 났다. 나도 이제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암튼 눈물을 참으려고 언매 교재를 펼친 다음 인강을 집중해서 봤다. 공부 생각으로 머릿속 잡생각들을 밀어내려고 했다.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누가 내 의자를 흔들면서 나를 불렀다. 담임 샘이셨다. 어젯밤에 내 꼴을 보시더니 힘드냐고 물으셔서 좀 힘들다고 답했더니 언제 한 번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시긴 하셨다. 근데 그게 하필 눈물 참고 있는 지금이라니! 역시 상담실에 들어간 후 샘이 뭐가 그리 힘드냐고 물으시자마자 결국 또 터져버렸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닦고 불안정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맘 편히 쉴 수 없는 게 힘들다, 외부와 고립되어 지내는 게 힘들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등등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말들을 쏟아내긴 했는데 눈물을 그치고 호흡을 안정시키려다가도 갑자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눈앞이 흐려지는 것이, 현재 내가 완전히 멘탈이 나갔고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상태라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게 됐다.

상담이 끝나고 자습실로 돌아오니 석식 먹기 전 마지막 교시인 9교시가 막 시작한 시간이었다.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니라서 책도 못 펼치겠고 머리도 아프고 해서 팔짱을 낀 채로 멍하니 있었다. 뭔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멍하니 있었더니 눈앞이 흐려지고 초점이 나가기 시작했다. 난 그 해롱해롱한 어지러움을 가만히 느꼈다. 그 뒤로는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든 것 같았다. 뭔가 꿈을 꿨던 것도 같고 무슨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종소리가 울려서 정신을 차렸을 뿐이었다. 그 종소리는 매일 아침 6시 30분, 아침 점호와 함께 울리는 기상 벨이랑 같은 종소리였기 때문에 듣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딱히 움직일 기분이 아니라서 현우만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현우가 내려가고 정신이 좀 드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자습실에 혼자 앉아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는데 누가 또 내 의자를 흔들었다. 저녁 안 먹냐고 물어보는데 담임 생인지 현우인지 구분이 안 돼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담임 샘이셨다. 샘과 1초 정도 눈을 마주쳤는데 눈물 콧물 질질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조용히 나가셨다. 그 뒤로 소리를 죽이며 더 울었다.

사실 퇴소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근데 퇴소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돈도 돈인데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조기 퇴소하면 현우가 혼자 남아 버틸 수 있을지, 현우도 힘들게 버티는데 괜히 내가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지가 걱정되었다. 쉽게 얘기를 못 꺼내고 있었다.

근데 시간이 좀 지나고 저녁을 먹고 온 현우가 날 밖으로 불러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토요일까지만 버티고 퇴소하겠다고 했다. 현우도 여기 오자마자 되게 힘들어했는데 담임 샘과 일주일만 버텨보기로 약속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기만 하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퇴고를 하겠다는 거고, 내 의견은 어떤지 물어본다는 거였다. 나도 더는 못 버티겠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 현우가 먼저 퇴소하면 그 뒤로는 정말 어떻게 버티지? 그 후로 현우랑 한 시간 가까이 운동장을 끊임없이 돌며 퇴소에 관해 얘기했다. 코와 귀가 얼고 진짜 졸라 추웠지만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 퇴소할래. 절대 현우 따라 나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우 때문에, 퇴소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망설여졌었지. 반드시 선생님께 말씀드릴 거다.

몰랐는데 갤럭시 탭에 문자 앱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는 사람 연락처 칸에 엄마 번호를 적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결이야 보고싶어

당연히 전송은 되지 않았다.


국어 | 1시간 56분 52초

수학 | 6시간 02분 38초

영어 | 2시간 03분 56초

윤리와 사상 | -

합계 | 10시간 03분 27초

매거진의 이전글2026 01 13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