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16 금

2학년 겨울방학

by Chris Paik 백결

윈터스쿨 7일 차.

드디어 오늘 퇴소한다. 오전만 잘 버텨보자. 현재 시각 오전 8시 17분. 기숙학원 107호 교실에 혼자 있다. 자습실이 너무 갑갑해서 선생님께 허락 맡고 현우랑 같이 빈 교실로 내려왔는데 현우는 심적으로 아주 힘든지 선생님과 상담한 후 양호실로 갔다.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현우 이야기는 더 안 하겠다. 물론 내가 상담을 자주 하지 않는다거나 양호실에 자주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괜찮다는 건 아니다. 나는 괜찮은 적이 없었다. 단지 참고 버티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현우의 상담 이후 나도 상담실로 불려 갔다. 윈터스쿨에서 가장 처음 본 선생님, 어디 특전사 출신 같아 보이는(외형만 놓고 봤을 때) 선생님이셨다. 윈터스쿨 첫날에 이 선생님을 보고 잔뜩 쫄았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시며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충분히 노력했다 등의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곳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친절하시다. 다만 이곳에서 지내는 게 너무 힘들 뿐이다. 선생님들이 모두 좋으셔서 여기서 힘들 때마다 선생님들을 찾아뵌 것이었다. J반 담임 김×× 선생님, 검은 비니를 쓰신 문×× 선생님, 특전사(처럼 생기신) 이×× 선생님, 학원 측의 퇴소 허가받는 절차를 밟아주신 임×× 선생님, 마지막으로 따뜻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대해주신 생활 지도 천×× 선생님,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39분. 점심 식사 이후 다 같이 특강실2에 모여서 하는 30분 국어 독서를 끝마치고 코칭룸4에서 혼자 일기를 쓰고 있다. 점심 식사 후 30분 국어 독서는 매주 월, 수, 금에 하는데, 오늘 지문은 뭐 아스피린이니 COX-1이니 뭐니 하는 과학 지문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노력은 해봤는데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1시 15분에 끝나는 종이 쳤다. 과학 지문은 늘 어렵다. 지문에서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며 글을 읽어야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과학 지문은 그 이해가 잘되지 않고 무슨 아랍어 서적을 읽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도 항상 과학 지문은 읽지 않고 넘겨왔다.

자습실이 아닌 코칭룸4에 앉아있는 이유는 이미 자습실에 있는 모든 짐을 전부 빼서 코칭룸4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이 좁은 방 안에 나와 현우의 모든 짐이 쌓여있고, 이따 3시 반에 담임 선생님이 출근하시면 바로 찾아봬서 퇴소 확정 받고 숙소의 짐도 다 뺄 거다. 코칭룸4가 ‘그나마’ 편안하다(물론 진짜 편한 건 아니다). 힘들 때마다 선생님께 찾아가 울면서 상담한 곳도, 어제 퇴소를 결정받기 위해 4시간 반 동안 기다리다가 녹초가 된 곳도 바로 이 코칭룸4였다.

열품타에는 그룹 채팅 기능이 있다. 그리고 내가 2025년 11월 28일 일기에서 써두었듯 나는 상욱이가 만든 그룹에 들어가 있다. 그렇다는 건 상욱이와 열품타로 연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스타도 카톡도 문자도 안되는 이곳에서 외부와 연락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물론 채팅 기능을 알아채지 못한 입소 첫날에도 상욱이와 간단하게 소통은 하긴 했다. 기존의 내 열품타 아이디가 ‘서울대 미대 쌉바르’였는데 이걸 ‘나 결인데 윈터 너무 힘들다’로 바꿨더니 상욱이가 보고 자기 아이디를 ‘나 상욱인데 결아 보고싶다’로 바꿔줬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힘든지 아직 엄마에겐 말하지 못했으니까 혹시라도 엄마가 내가 정말 힘들어하는지 모르고 퇴소 허락을 안 해주실까 봐, 며칠만 더 버티라고 하실까 봐 정말 불안했었다. 그래서 상욱이에게 열품타를 통해 엄마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뒤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얼마나 힘든지, 퇴소가 얼마나 간절한지 등등)을 다 적어서 상욱이에게 보냈다. 상욱이에게 이 내용들을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했고, 고마운 상욱이가 답장까지 받아 내가 전달해줬다.

와…, 엄마가 이따 퇴소 관련 전화가 오면 퇴소를 허락하겠다고 하셨다. 하…. 이제 진짜 나갈 수 있다. 퇴소까지 남은 두 변수 중 하나인 부모님의 퇴소 허락 여부 변수가 하나 지워진 셈이다. 이제 한 가지 변수만 충족되면 퇴소가 확정된다. 아, 정확하게 말하면 조기 퇴소는 이미 확정이라고 보면 되고, ‘오늘’ 퇴소가 확정된다. 그 남은 변수란 바로 현우네 부모님 차 타고 집에 가는 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현재 교회 수련회 때문에 대전에 가 계셔서(하필) 나를 데리러 못 오신다. 현우네 부모님의 은총으로 차를 얻어 타 평택까지 같이 가면 되지만 만에 하나, 현우네 부모님이 나를 태워주실 수 없다고 하시거나, 내 짐이 차에 다 들어가지 않아 탈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내일 오후에 우리 부모님이 수련회를 끝마치고 데리러 오실 때까지 현우 없이 ‘혼자’ 버텨야 하는 불상사가 생겨버린다. 지금까지 퇴소한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조금은 사라진 상태였는데, 오늘 집에 가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나니 다시 불안해졌다. 하나, 이 부분은 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기도 메타 들어가야 한다. 제발 오늘 집에 가게 해주세요, 주님…. 저 오늘 잠은 집에서 자고 싶어요…! 내일 일기가 ‘윈터스쿨 8일 차.’로 시작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23분.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가슴이 쿵쿵 뛴다. 집에 갈 거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집에 못 갈 수도 있다는 불안함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놈의 윈터스쿨은 입소부터 퇴소하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불안함을 못 지우게 하는구나.

현재 시각 오후 3시 38분. 현우가 안 보이는데 어디서 쉬고 있는 건지 담임 샘이랑 상담 중인 건지 모르겠다. 현우가 먼저 상담하고 부모님과 통화하기로 했으니 끝나면 내게 오겠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엄마 아빠랑 통화하고 숙소로 가서 짐을 싸겠지. 오늘 못 나간다고 하면 너무 절망적일 것 같다…. 몇 시간 후의 결아, 만약 집에서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아직도 기숙학원 코칭룸에서 마플시너지 확통 162번 문제나 풀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과거의 너를 비웃어라. 깔깔

비웃으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네 자신으로 하여금 진짜 행복한 게 뭔지 알게 하라.

이제 윈터스쿨 일기를 종료하겠다. 이따 저녁에 집에 가서 마저 쓰겠다. 수고했어, 나 자신. 비록 윈터스쿨에서 끝까지 버티지는 못했지만, 이 값진 경험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사용하여 꼭 목표한 바를 이루도록 하자.

오늘부로 7일간의 윈터스쿨이 종료됐다.


국어 | 57분 58초

수학 | 2시간 53분 10초

영어 | 15분 51초

윤리와 사상 | -

합계 | 4시간 07분 00초


추가) 어 나 결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집이다. 코칭룸에서 저 마지막 문장을 쓰고 퇴소하기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할 말이 많은데 지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피곤해서 내일 일기에 쓰겠다.

집에 왔다, 집에 왔어. 일주일만에 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오늘 밤을 즐겨야지.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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