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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살아도 행복하다

후회 없이 미쳐봤다면 미련 없이 사라져 보자 열정은 식어도 삶은 계속된다

0. 준비를 위한 준비(Prologue)


 원 없이 쉬어보자. 시간의 굴레를 벗자. 내려놓자. 멈추면 뭐가 보인다더라.


잘 모르겠고 솔직히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집에 그냥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의 마지막 순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왔다.

주유를 하지 않고 차를 달리면 언젠가 경고등이 들어오는데 

돌아보면 그것마저 무시하고 달려왔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마지막 몇 방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모든 연소가 끝나기 직전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일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렇게 나에겐 너무나 위대하고, 남에겐 전혀 인식되지 않을 정리의 순간을 조촐하게 맞이했다.


오랜 시간 은퇴를 준비한 것도

버럭 하는 마음에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완벽할 수 없는 한 줄로 표현하자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

장황할 수 있는 긴 줄로 표현해 봤자 '힘들고 더럽고 더는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멋진 척, 깨달은 척, 자유로운 척, 그럴싸한 포장과 함께 이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방송 PD로 20

낮과 밤은 하늘 색깔의 차이일 뿐, 근무환경은 영원한 백야(白夜)였고

삶의 질은 생각 자체가 사치일 뿐, 가정에서는 겉도는 존재(存在)였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장래희망을 두 가지 정도 걸어 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프로듀서였다.

혹시, 어른이 되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먹고살기 위해 갖게 된 직업이 경비원이라면 방송국을 지킬 것이고

청소원이라면 방송국 바닥을 쓸 것이라는, 애국심에 버금가는 정신 무장이 오늘을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인다는 두근거림은

무한한 열정과 결합되어 마음속에 다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감정들이 지친 후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그때는 인생이 이렇게 길 줄 몰랐고, 몸과 마음도 언젠가 늙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죽더라도 촬영장에서 쓰러지겠다고 했던 유명한 배우처럼

죽더라도 촬영장에서 쓰러지겠다고 했던 무명의 연출가는

이제 고개를 흔들며 그때는 철이 없었다고, 가족은 뭐가 되냐고, 잠시 미쳤었다고

참회와 반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20년의 흥망성쇠 속에는 아름답고 더러운 추억들이 또렷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고

지금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재방송되며 눈의 초점을 잃고 멍하게 넋을 잃게 만들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정말이지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결말이 도출되어 뒷맛이 쓰다.

다 지난 일, 돌아오지 않을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이제 은퇴하고 끝난 일...

내 인생은 내 책임인 것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허탈함과 공허함, 떨어진 자신감, 바닥을 기는 자존감이 정리가 불가능하게 얽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결론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명예로운 은퇴와는 당연히 거리가 멀었고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지금까지 모래성을 쌓아 올렸나?'라는 깊은 허무와 자괴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환멸이나 세상을 향한 울분은 심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고요했다.

그렇기에 다가올 인생의 후반전을 의연히 맞이하고 시작한다.


 일하지 않는다. 집에서 쉬겠다. 


준비를 위한 준비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했다.

은퇴를 하며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적어도 원했던 꿈을 이뤄 원 없이 했다.


이제는 어떻게든 앞으로의 인생을 그려나가야 한다.

모래성은 파도에 휩쓸려 갔지만 모래는 그대로 남아있다.


살아온 만큼 살아가야 하기에 이제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찾아야 한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찾아 날아갈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경주마 같은 삶은 없다. 

천천히, 소소하게, 무리하지 않고, 연연하지 않고, 적당히 행복하게 살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준비를 위한 준비는 여유롭고 태평한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동차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대부분 불안감을 느끼고 급하게 주유소를 검색하거나 

여유로운 척하더라도 언젠가는 불안감에 휩싸여 연비 운전을 하게 된다. 

나중에 알았다.

 경고등이 들어오고 나서도 약 70km을 더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겐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고, 다시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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