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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1일차의 요리정복기 Part.2

Ep6. 가족을 위해 준비한 초보 요리사의 첫 메뉴는?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강한 요리 

초보도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밑반찬이 필요 없는 일체형 한 그릇 요리

욕심을 조금 부린다면, 만드는 사람도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요리


한정식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시선을 일본으로 돌렸고

우리 집 식단을 채워 줄 리스트를 구상한 후, 그중 하나를 골라 가족에게 선보이기로 했다.

새로 부임한 전업주부가 준비하는 첫 요리는 

일본의 평범한 가정식 오차즈케(お茶漬け)였다.


간단하게 레시피를 소개한다면

1. 연어를 굽는다. 

2. 그릇에 밥을 담고, 파를 뿌린다.

3. 구운 연어를 밥 위에 얹고, 육수를 부은 후 먹으면 된다.

라면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간단하다.


생전 처음 본 요리지만 굉장히 쉽고, 이국적인 매력이 초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 집에서 연어란, 초밥 전문점에나 가야 한두 개 먹어보는 정도로 익숙지 않은 신선한 재료였고

오차즈케(お茶漬け)란 이름 역시, 아빠의 요리에 대한 신비감과 새로움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한 마디로, 얼마든지 대단한 척 포장이 가능한 '꿈보다 해몽'같은 요리였다.


연어는 자이글에 올리고 옆에서 지키고 있으면, 연기도 안 나고 태울 일도 없다.

육수는 다른 사람들의 레시피를 하도 많이 봐서, 나만의 비법으로 재탄생한 상태인데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기본 베이스는 일본 효고현(兵庫県)에서 

35년째 식당을 하시는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 유튜버가 그렇게 말했을 뿐. 난 현재까지 믿고 있다.


1일차 주부에 의해 멋대로 재가공된 육수 비법을 공개하자면

물 넣고, 다시마 넣고, 끓으면 다시마 빼고, 불 끄고, 가쓰오부시 한 줌 넣고 

혼다시(ほんだし)를 약간 넣으면 끝이다.

나도 처음에 '혼다시'에서 막혔지만, 온 동네 마트에 다 있는 흔한 재료이며 

다른 요리에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효고현의 그분은 불을 끈 후 95도에서 가쓰오부시를 넣으라고 했는데 

일본 장인 특유의 섬세함에 박수를 보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가족 앞에 주부로서 첫 번째 요리를 선보이는 순간이다. 

뭘 해줄 거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오차즈케'라고 답을 했지만, 이름부터 거부감이 드는 눈치다.

너희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 일본 효고현에 사는 장인의 레시피를 구했다고 말했다.

다분히 요리와 요리사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올리고 싶은 간절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오차즈케도, 효고현도 모르는 이들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다.

비웃음이 절반 정도 섞인 살인 미소로 

'대단한 척 포장하지 말고 배고프니 빨리 가져오라'라는 아내의 엄명이 떨어졌다.


식탁에 자리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오차즈케를 대령한다. 

검사받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자신이 있었기에 기분 좋은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간다!









처음 보는 비주얼이다.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생소함에 3초간 음식을 보던 아내가 첫 질문을 해 온다.


"밥에 물 말았나?"


순간, 허탈한 감정과 함께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럴 법도 한 모습이기는 했다.

일본 장인의 육수 비법이 정수기에서 버튼 한 번 눌러 나온 것쯤으로 격하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효고현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무리다. 

솔직히, 가본 것도 아니고, 그곳이 일본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먹어봐라!"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나는 식탁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 상태로 심사평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번씩 씹은 후에 곧바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한 가지, 요리 대결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이들은 "맛있다"다 전부였다.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안심 또 안심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만족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답을 듣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조금 더 깊은 심사평은 역시나 심사 위원장인 아내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국물이 은은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아침에 먹기 편하다." 

"연어가 몸에 좋다는데 파와 함께 곁들여 먹게 되어 아이들 건강에 매우 좋을 것 같다."

"국밥처럼 호로록 잘 넘어간다."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쇼케이스가 성공적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요리를 준비할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될 발언이었다.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시청률 1위를 한 프로듀서의 마음에 버금갈 기쁨이었다.

방송도 첫 회가 성공하면, 특별한 사고가 없는 이상 무난하게 연착륙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기쁜 마음이었지만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살짝 거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냥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육수의 비법은 95도에서 가쓰오부시를 넣는 것이고 

연어는 자이글 5단계에서 8분 17초 정도를 굽는다는 얼토당토않은 허세를 부렸다. 

정말 믿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지는데 나의 케케묵은 개그 스타일을 아는지라 

아이들은 웃으며, 아내는 비웃으며, 나는 바보같이 웃으며, 그렇게 즐거운 아침 식사를 했다.


'요리가 취미인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잠시 머리카락이 설 정도의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비장의 무기.








똑같은 음식이지만, 명란을 넣으면 특유의 짭조름함과 육수에 젖은 밥이 잘 어우러져 풍미를 더한다.

맛있는 젓갈 하나만 있어도, 밥 두 공기 이상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명란 한 덩어리로 역시 밥 두 공기가 가능하다. 

역시나 별 5개의 평점과 함께 처음부터 함께하고 있다.


그 후, 오차즈케는 매주 일요일 아침의 고정 메뉴가 되었고 

매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주부로서 이런 고정 식단은 매우 큰 힘이 된다. 

이러다 요리책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첫 술에 배 한번 불러본다. 


그러나 

나는 주부이기 전에 은퇴자이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 어떤 새로운 것을 글로 적을지 모른다.

인생 2막의 모험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요리는 하루 세 번 돌아오는 식사시간처럼

지칠 때쯤 활력소를 주는 에너지같이 글로 남기고 싶다. 


일본 음식을 알았으니 일본어를 배울 수도 있고 

인생 2막이 열렸으니 실제 연극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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