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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Jun 26. 2024

가난와 안타까움에 대해

<소금>


교과서 작품을 읽으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설렁탕이 먹고 싶다던 아픈 아내(하지만 결국 먹지 못했지요.), 부엌에 쪼그려 앉아 가족 몰래 무언가를 먹던 만삭의 아내(알고 보니 귤껍질이었지요.), 정직하게 자랐지만 홀아비에게 팔려가 점점 타락해가는 복녀(결국은 낫에 베여 비극적 죽음을 당하지요.)...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가난’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오래 살수록 비참한 일만 더 많다.”(타키투스), “네가 가난해지면 형제들은 너를 미워하고 친구들은 모두 너를 피할 것이다.”(초서), “부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가난뱅이들은 이미 지옥에서 죄수 노릇을 하고 있다.”(A.체이스) 등 가난과 관련한 옛사람의 말이 매섭게 들립니다.      


오늘 살펴볼 작품 역시 ‘가난’과 관련 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가난을 실감나게 그린, 슬프고도 안타까운 작품입니다.






"어머니 나두 운동화 신으면……."

무의식간에 봉염이는 이런 말을 하고도 어머니가 나무랄 것을 예상하며 어머니를 바라보던 시선을 달래 뿌리로 옮겼다.

달래 뿌리와 뿌리 사이로 나타나는 운동화, 아까 용애가 운동화를 신고 참새같이 날뛰던 그 모양!

"쟤는 이따금 미친 수작을 잘해!"

그의 어머니는 코끝을 두어 번 부비치며 눈을 흘겼다. 봉염이는 달래가 흡사히 운동화로 변하는 것을 느끼며 어머니 말에 그의 조그만 가슴이 따가워 왔다....

“왜 돈 없는지 내가 아니, 우리 같은 거지들에게 왜 태어났니, 돈 많은 사람들에게 태어나지. 자식! 흥 자식이 다 뭐야!”          



강경애의 <소금>은 193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일제 치하에 수많은 조선인이 고향을 등지고 중국으로 갑니다.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등으로 일제의 수탈이 계속되었기에 조선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지요. 봉염이네 가족도 그런 이주민 중 하나였죠.

     

하지만 간도가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진 않았습니다. 지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를 제하면 이들에게 남는 것은 불행과 궁핍뿐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벽에 걸린 메주를 봅니다. 머릿속엔 소금 생각 뿐입니다. 메주로 장을 담그려면 소금이 필요한데 비싸서 구하질 못하지요. 마침 딸 봉염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네요. 운동화를 신고 참새같이 뛰던 친구 모습이 생각나 엄마에게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미친 수작’이라고 맞받아칠 수 밖에 없는 여인의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그때 귓가를 스치는 총소리가 들립니다. 모녀는 눈이 동그래져 일어나지요. 그것은 운명을 향해 다가오는 비극의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연이어 총소리가 들립니다. 남편은 지주를 만나러 아까 건너 마을로 갔거든요. 여인은 딸과 꼭 붙어앉아 기다립니다. 그리고 한참 후 “어머니!” 소리가 들려오지요. 아들의 목소리입니다. 


부르는 봉식의 음성에 그들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마주 아우성을 치고도 얼른 밖으로 나오지를 못하였다. 그들이 움 밖에까지 나왔을 때 또다시 우뚝 섰다. 그것은 봉식이가 전신에 피투성이를 했으며 그 옆에 금방 내려 뉜 듯한 아버지의 목에서는 선혈이 샘처럼 흘렀다.     



여인은 비명을 지르고 다시 멍하니 바라봅니다. “너 아버지, 너 아버지....” 그녀는 중얼거릴 뿐이었지요. 남편이 공산당의 총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당시 공산당은 계층 불평등을 반대하며 지주들을 습격하였는데, 정작 지주는 살고 애꿎은 소작인만 당한 셈이었지요.


이튿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아들 봉식은 집을 나가 버립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지주에게 굽실거리던 것이 아니꼬왔는데 저렇게 주검이 된 걸 보니 더욱 마음 아팠겠지요. 모녀는 봉식이가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봄이 다 지나도 소식조차 들리지 않지요. 그들은 봉식이를 찾아 떠나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주의 집으로 가서 봉식이를 찾아달라고 사정하지요. 넓은 방, 대리석으로 만든 테이블, 큰 시계, 유리단지 속 금붕어.... 중국인 지주 팡둥의 집을 보자 별천지에 들어온 듯 정신이 얼얼합니다.     


여자 둘이서 살아가기에 세상은 무섭고도 위험했지요. 친척이 있냐는 팡둥의 말에 더욱 외롭고 가엾어집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슬픔이 눈물로 변하여 떨어집니다. 곁에 앉은 봉염이도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글썽거리네요.


팡둥은 이들을 집에서 내보내려면 돈이라도 몇 푼 집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집에 두고 일이나 시켜볼 마음이지요. 이렇게 그들은 팡둥의 집에서 살게 됩니다.     


어느 고요한 밤입니다. 곁에 잠든 딸 봉염의 그윽한 숨소리만 들릴 뿐이죠. 바느질을 마친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짧았던 남편의 일생을 떠올립니다. 반찬 한 번 맛있게 해주지 못했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렸지요.     


그렇게 살고 말 것을 반찬 한번 맛있게 못 해주었지. 고춧가루만 땀이 나도록 먹구 참.... 여기는 왜 소금값이 그리 비쌀까? 그래도 이 집은 소금을 흔하게 쓰두만. 그게야 돈 많으니 자꾸 사오니까 그렇겠지. 돈?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가 있구나. 그 비싼 소금도 맘대로 살 수가 있는 돈, 그 돈을 어째서 우리는 모으지 못했는가.     



그런데 밖에서 신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덜컥 열립니다. 팡둥이었지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옵니다. 여인에게 배고프지 않냐며 자기 방에 가서 과자도 먹으라고 하지요. 팡둥의 아내가 어제 친정집에 간 것을 알기에 여인은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자 팡둥은 그녀 손에 들린 옷감을 빼앗으며 방으로 가자고 독촉하지요.      


“안 가?”

팡둥은 일어서며 아까와는 달리 언성을 높인다. 여인은 가슴이 선득해서 얼른 일어났다. 그러나 비쭉비쭉 나가는 팡둥의 살찐 뒷덜미를 보았을 때 싫은 생각이 부쩍 들었다. 그리고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문 밖을 나가던 팡둥은 휙근 돌아보았다. 그 얼굴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무서움을 띄웠다. 그는 맥없이 구들을 내려섰다. 그리고 잠든 봉염이를 바라보았을 때 소리쳐 울고 싶도록 가슴이 답답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듬해 늦은 봄입니다. 여인은 바느질을 하다가 문득 석양을 바라봅니다. 빨간 문 위에 처마 끝 그림자가 드리웠지요. ‘오늘이나 오려나?’ 여인은 가슴을 졸입니다. 팡둥이 온대야 그리 기쁠 것도 없지만 어쩐지 그가 기다려지고 그립습니다. 그날 이후로 냉랭해진 팡둥의 태도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사랑받는 팡둥의 아내가 부럽기도 했지요. 여인은 시름없이 머리를 숙이며 애를 밴 자신의 배를 살핍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을 돌아봅니다. 고향을 떠나와 타지에서 남편을 잃고 아들도 사라졌습니다. 남은 모녀는 땅도, 가진 재산도 없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그들이 그나마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던 곳은 팡둥의 집밖에 없었지요. 자신의 정조를 빼앗겼지만, 목숨은 보호받았으니까요. 이것이 간도 유랑민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먹고 싶은 냉면도 못 먹고 이때까지 참아 왔던가. 모두가 자기의 못난 탓인 것 같다. 왜 말을 못 해, 왜 주저해, 이번에는 말할 테야. 꼭 할 테야. 그리고 냉면도 한 그릇 사다 달라지 하며 여인은 눈앞에 냉면을 그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모든 난문제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거늘 어린애같이 먹고 싶은 생각부터 하는 자신이 우습고도 가련해 보였다. 그러나 먹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목이 가렵도록 먹고 싶다. 냉면만 생각하면 한참씩은 안절부절못할 노릇이다.     



뱃속에 애가 든 걸 알았을 때 양잿물을 마시고 죽어버릴까 그녀는 생각했지요. 하지만 무섭습니다. 그렇게 먹고 싶던 냉면을 못 먹고 죽는다는 것도 애달픈 일이었지요. 더구나 봉염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남에게 들킬세라 끈으로 배를 동이고 밥도 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외출 다녀온 팡둥이 성급히 그녀를 부릅니다. 그는 봉식이가 공산당 패거리가 되어 총살당하는 걸 보았다고 하지요. 공산당이라면 치가 떨린다던 그는 모녀를 문밖으로 내쫓습니다. 


“흥, 자식을 얼마다 잘 두었기에 애비 원수인 공산당에 들었을까. 그런 것들은 열 번 죽여도 좋아... 우리는 공산당 친척은 안 돼. 공산당과는 우리는 원수야. 오늘부터는 우리집에 못 있어. 나가야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뒤로한 채, 모녀는 다시 허기진 몸을 이끌고 해란 강변에 이릅니다. 어느 중국인 집에서 파를 다듬어주고 헛간에서 하룻밤 자게 되지요. 바람은 후루루 불고 빗방울은 후두두 떨어지는 밤입니다. 몸이 아프고, 아기가 나옵니다. 원수의 아기, 원치 않았던 아기입니다. 한때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핏덩이 아기를 보니 마음이 바뀝니다.     


그녀는 아기를 자신의 가슴속에 꼭 대며 자기가 아무렇게서라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왜 죽어, 꼭 산다. 너희들을 위하여 꼭 산다 하고 중얼거렸다.     



아기를 낳으니 너무나 배가 고픕니다. 미역국이라도 한 그릇 먹으면 좋으련만, 그런 건 없지요. 대신 컴컴한 저편 구석에 보이는 건 파뿌리! 여인은 파를 입 속에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주인이 올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살아야 하니까요.

     

며칠 후 여인은 한때 이웃이던 용애 어미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 집에서 몸조리를 하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맛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봉희라고 이름 지었지요. 봉염과 봉희. 여인은 두 딸만 보아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러나 신세만 지고 있을 수 없지요. 마침 근처 부잣집에 아기가 태어나 젖 유모를 구한다기에, 그것이라도 하기로 합니다. 여인이 유모로 들어가면서, 두 아이는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그곳에 살게 합니다. 봉희는 봉염이가 맡아 기릅니다. 아이가 아기를 기르는 셈이지요. 여인은 밤마다 주인집을 빠져나와 두 딸이 있는 곳으로 달음박질치지만, 그것도 주인댁 눈치가 뵈어 자주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납니다. 봉희도 이제는 빨빨 기어다니지요. 때로는 오뚝 서기도 하고요. 하루는 봉염이가 열병에 걸려 온몸이 불덩이 같습니다. 동생 봉희는 곁에서 앵앵 울고 있네요. 엄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입니다.      


“봉희야, 너 엄마 보고 싶니? 우리 갈까?”

봉염이는 누가 시켜 주는 듯이 이런 말을 쑥 뱉었다. 봉희는 말끄러미 보더니 밥술을 뎅그렁 놓고 달아온다. 봉염이는 아차 내가 공연한 말을 했구나! 후회하면서 봉희를 힘껏 껴안았다. 그때 두 줄기 눈물이 그의 볼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이는 왜 안 나와. 오늘은 꼭 올 차례인데. 그렇지 봉희야!”

봉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응.”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두 아이와 헤어져 있던 시간을 보내면서 어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열병을 앓던 봉염이는 사흘 후 죽고 맙니다. 봉희 역시 몹시 앓다가 죽어버렸지요. 여인은 집으로 달려와 가슴을 치며 주저앉습니다. 

       

“남의 새끼 키우느라 제 새끼를 죽인단 말이냐.... 이년들 모두 가면 난 어쩌란 말이냐. 날 마자 다려가라.”     


목소리가 찢어지고 갈라져 나오지도 않습니다. 밤마다 숨 가쁘게 집에 뛰어와 아이들을 보았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하며 울음을 흘렸지요. 유모집 아기가 깰 까봐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도 봉염이는 차마 가지 말란 말을 못했어요. 다만 엄마의 치마깃을 잡으며 “조금만 더....”라고 말하곤 했지요. 그 떨리는 음성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누구를 보면서 살아야 하나요. 밤하늘의 밝은 별 아래에서 여인은 방황합니다. 이 모습을 본 용애 어머니가 와서 밥이라도 한술 뜨라고 하지요. 그녀 몸에서 청어 비린내가 물씬 풍기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옵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도 배는 고프고 밥은 먹어야 하지요. 그것이 인간입니다.     


용애 어머니는 남편이 벌이를 하러 오늘 떠났다고 합니다. 벌이란 다름 아닌 소금장사였지요. 당시 조선에선 소금 한 말에 30전이었지만, 이곳 간도에서는 2원 넘게 팔렸기에 들여만 온다면 큰 이문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금지되었기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밀수입을 했지요. 몸이 튼튼해지거든 한 번 해보라는 용애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녀는 기운이 버쩍 나면서도 다시 얼핏 생각하니 두 딸을 잃은 자기다. 남들은 아들딸을 먹여 살리려고 소금 짐까지 지지만 자신은 누구를 위하여...? 마침내 자기 일신을 살리려 라는 결론을 얻었을 때 여인은 너무나 적적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일신일지라도 스스로 악을 쓰고 벌지 않으면 누가 뜨물 한 술이나 거저 줄 것일까? 굶는다는 것은 차라리 죽음보다도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북국의 스산한 가을 벌판에서 소금을 진 여섯 사람 중 여자는 그녀뿐입니다. 머리에 인 소금 너 말은 마치 쇠뭉치 마냥 머리를 짓누릅니다. 어제도 이 근방 어디서 소금 짐을 지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고도 들었지요. 강을 건널 때는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것 같고, 밭고랑을 지날 때는 수수 벤 자국에 찔려 피가 흘렀지요.     

사흘 동안 걷다가 총을 든 무리를 만납니다.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데, 공산당인 그들은 다행히 소금을 뺏지 않습니다. 남편을 죽인 놈들을 고마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겨우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지냅니다. 잠깐 잠이 든 새벽에 누군가가 그녀를 깨우죠. 눈을 떠보니 칼을 찬 순사 둘이서 날카롭게 외칩니다. “이년! 너 사염(私鹽, 정부 허가 없이 밀매하는 소금)을 팔러 다니는 년이구나. 당장 일어나라!” 순사는 여인의 손을 강하게 낚아채지요.      


작품은 이렇게 끝납니다. (일제 검열로 뒷부분이 삭제되었는데 - 그녀가 밀수 도중 만난 공산당원의 말을 떠올리며, 공산당이야말로 자신과 같은 사람의 편에 섰다는 점을 깨닫는다는 결말을 몇해 전 복원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작품을 다시 봅니다. 세상 모든 어른은 알고 있습니다. 가난으로 얼룩진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를요. 그렇기에 대부분은 노력합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이를 대물림하지 않으려고요. 봉염 어미의 눈물겨운 삶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지나온 현실을 떠올리면서 숙연해집니다.     


가난.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요. 허나 가난 때문에 안타까워할 일이 적었으면 합니다. 생활고 때문에 누군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또한 조금씩은 베풀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것이 어른이 된 지금, 제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더불어 돈을 벌러 타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죽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배터리 공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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