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猶豫)'는 무언가를 미뤄둔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집행유예’처럼 법률 용어로 사용하지요.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미뤄두곤 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셈이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십대 학창 시절에는 학업과 입시를 위해 많은 유혹을 참고 포기했지요. 그것이 학생의 미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래야만 하는 환경이었고, 그걸 강요받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인내하는 게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당장 모든 걸 때려치우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알았으면 합니다. 십대엔 십대 나름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이 있다는 걸요. 그 시기는 열정이 넘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크지요. 또 자신의 욕망을 찾고, 어떻게 그것들을 충족하는 지도 배우고요. 그건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역시 돌아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들이었고요.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낙락장송 고목되면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눈먼 새도 아니오네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비단 옷도 떨어지면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행주 걸레기로 다 나가네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좋은 음식도 쉬어지면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여물밖에 더 되는가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고생하던 우리 농군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금년 농사도 잘 지었으니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우렁차게 놀아보세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 소리도 고만하세 켕마쿵쿵 노~세이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
이 작품은 경상북도 예천에서 전해지던 민요입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 불렀던 일종의 노동요이자 유희요라 할 수 있지요. 후렴구인 ‘노~세~이노~세 켕마쿵쿵 노~세이’가 작품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흥겨움을 더하기 위해 덧붙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홀수 행을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짝수 행을 부르는 선후창 방식으로 되어 있지요.
내용을 볼까요? ‘낙락장송이 고목되면 눈 먼 새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낙락장송은 지조와 절개가 높은 소나무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 고목이 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새도 찾아오지 않을 정도로 무용지물이 됩니다. 멋진 것이라 해도 영원하진 않지요.
‘비단옷도 떨어지면 행주 걸레기로 다 나가네’, ‘좋은 음식도 쉬어지면 여물 밖에 더 되는가’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지금은 대단해도 언젠가는 볼품없어지기 마련입니다. 미인도 세월이 지나면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손이 거칠어지니까요.
본래 농사일이란 게 고되고 힘들지요. 새벽부터 해 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일해야 하니까요.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풍요롭지 못했고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든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요. ‘고생하던 우리 농사꾼들, 금년 농사도 잘 지었으니 우렁차게 놀아보자’라는 부분에 눈이 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렁차게’입니다. 놀 수 있을 땐 신명 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후렴구에 ‘노~세이’가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우리 선조들은 알았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고, 바로 이때를 즐겨야 한다는 것을요.
이제 나이가 들어 작품을 다시 봅니다. ‘소년이로(少年易老, 소년은 늙기 쉽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실 어른의 시간도 빠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동시에 ‘현재’도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 둘 간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지요.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