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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Jul 17. 2024

장인을 찾아서

<방망이 깎던 노인>

2023년 네팔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2016년에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뒤로, 7년 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지요. 목적은 랑탕 국립공원 트레킹이었습니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랑탕 초입인 샤브루베시까진 140km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스로 10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도중에 버스가 고장 나 지체되었거든요. 새벽에 출발했지만 오후 늦게야 도착했지요.

      

지루할 법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버스에 있는 내내 제 이목을 집중시킨 게 있습니다. 주변의 황량한 자연 풍경도, 정신 나갈 듯 울려 퍼지는 음악 테이프도 아닙니다. 버스 안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거친 콧수염과 우람한 어깨. 매연과 햇빛으로 검게 탄 피부. 가만히 서 있어도 맞은편 상대를 압도할만한 체구. 나이는 한 30대쯤 되었을까요?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버스 ‘승무원’이었습니다.      





그는 버스에서 가장 바빴습니다. 승객들로부터 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주고, 자리를 정해주고, 만약 승객 간에 자리 분쟁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고(그의 쩍 벌어진 어깨가 갈등 해결의 도구 역할을 했지요), 승객의 짐을 정리하고, 때로는 차문 밖에 매달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호객을 하고, 어딘가 내리겠다고 승객이 말하면 그 정보를 운전기사에게 알려주고(하차 벨 같은 거 없음), 승객이 내리면 두터운 손바닥으로 차문을 탕탕 내리쳐 출발해도 된다는 신호를 운전기사에게 보내고, 정류장도 아니건만 누군가 버스에 타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다시 탕탕 치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그렇기에 마을을 지날 땐 매의 눈으로 바깥을 주시했지요), 때때로 운전석 옆으로 가서 음악 장르를 변경하고(불행하게도 그의 선곡은 제 취향이 전혀 아니었지만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버스에 있던 10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쉼 없이 움직이는 걸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렇게 일하면 하루에 얼마나 받을까?’라는 참으로 속물적인 호기심도 들었지요. 동시에 문득 한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은 1974년에 발표된 수필입니다. ‘벌써 40여 년 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길거리에서 만난 한 노인에 대한 회고이지요.      


작가는 방망이를 하나 깎고자 합니다. 하지만 노인은 값을 비싸게 부릅니다. 조금 깎으려 하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라며 노인은 단칼에 거절하지요.     


기분이 별로 좋진 않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흥정은 관두고 그냥 잘 깎아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태도도 문제지만 더 문제는 시간입니다. 보기엔 이미 다 깎은 것 같은데도 노인은 한세월입니다. 재촉을 하고 항의를 해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시간은 이미 지날 대로 지났습니다. 다 되었다는 노인의 말이 더이상 반갑지 않습니다. ‘그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작가는 이미 잔뜩 화났지요. 하지만 아내는 달리 말합니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나는 비로소 마음이 풀립니다. 그간의 생각도 뉘우치지요. 나는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노인을 찾았지요. 하지만 노인은 있지 않았습니다. 허전하고 서운했지요. 나는 멍하니 자리에 서서 사과드릴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작가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던 성실한 노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전통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 세태를 아쉬워하지요. 노인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을 이해와 자기반성으로 승화시킨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냈기에 이 작품은 지금도 명수필로 인정받고 있지요.                    






장인(master craftsman)이란 말을 들어본 지 오래입니다. 최근에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네요. 장인은 앞으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돈이 되지 않고,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려는 사람도 적을 테고,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돌아갑니다. 삐걱거릴지언정, 휘청거릴지언정 장인들이 있는 한 사회가 급격히 무너지진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진 분들이 결국 우리 사회를 지탱하니까요.     


버스를 운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기범을 취조하고, 공장의 화재를 진압하고, 협심증을 진단하고, 공공 도서를 관리하고....     


세상 사람들의 역할은 제각각입니다. 급여도, 직업에 대한 인식도, 사회적 지위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일을 책임감 있게 성실히 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커다란 이득이자 혜택입니다.        


장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샤브루베시로 가는 버스 승무원도, 방망이 깎던 노인도 모두 장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존경합니다. 또한 이들이 보다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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