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급에서 졸업앨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졸업까진 몇 달 남았지만, 지금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능 후 고3은 현장체험학습으로 학교에 없는 경우도 있고, 논술이나 정시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2차 지필평가를 끝내고 여름방학을 앞둔 때가 오히려 좋습니다.
졸업 영상은 간단합니다. 한 사람당 3초 내외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혼자 나와도 되고 둘, 셋이 같이 나와도 되지요. 셋이 나오면 총 9초의 시간입니다. 주제는 “30년 뒤의 나에게”,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학교를 떠나며” 등 자유롭게 정하라고 했습니다. 반이 30명이니 총 1분 30초짜리 추억 영상을 제작하는 셈입니다.
반장, 부반장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둘은 학생들에게 영상 제작 취지를 설명하고는 조를 편성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나오는 것보단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뽑기를 통해서 세 명씩 조를 편성하더군요.
그런데 임의로 조 편성된 학생들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들이랑 찍고 싶은데 그렇지 않게 되었지요. 불편한 관계인데도 같은 조로 편성된 경우도 있고요. 웬만하면 제가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행을 잠시 중단시키고 물었습니다. “이게 좋은 생각일까?”
물론 이해합니다. 촬영 때 혼자 찍을 학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 또 그런 학생들 배려하기 위해 어떻게든 조를 만들어서 영상에 함께 넣으려는 그 마음은 참으로 예쁩니다. 반장, 부반장 역시 나름 고민을 했겠지요.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가 가까운 사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억지로 친해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예수님, 부처님 같은 성인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단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다들 성향이 다르고, 개성이 다릅니다.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 역시 어릴 땐 다른 이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를 맞추려 한 적도 많았지요.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랑 맞지 않는 이와 억지로 친해지려 하지 않고, 차라리 친한 사람에게 더 신경 쓰고 잘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나머지는 그냥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더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구름의 빛깔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자주 검어지네.
바람 소리가 맑다지만,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쉬이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른 듯하다가 이내 누른 빛을 띠는가?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워지면 잎이 떨어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서리를 모르고 살아가는가?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게 뻗은 것을 그것으로 하여 알겠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으며,
또 속은 어찌하여 비어 있는가?
저렇고도 사철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오우가>는 ‘다섯 친구 노래’라는 뜻의 연시조입니다. 다섯 친구는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입니다. 자연물이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나름의 특징이 있고, 큰 위안과 만족도 주니까요. 하나하나 살펴보지요.
2연에선 구름 빛이 좋긴 하지만 검기를 자주 한답니다. 바람 소리 역시 맑지만 그칠 때가 많지요. 참으로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네요. 이런 친구들과 옆에 있으면(특히 여행을 같이 간다면....) 힘들지요. 하지만 물은 어떤가요? 맑고 꾸준히 흐릅니다. 기분 나쁘다고 멈추거나 거꾸로 흐르는 일 따윈 없지요. 그렇기에 물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답니다.
3연을 보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계절이 바뀌면 쉽게 져 버립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요. 풀 역시 마찬가지에요. 여름에는 푸르게 빛나지만 가을이 되면 누렇게 변색되지요. 그러나 바위는 어떤가요? 바람과 파도에 깎일지언정 태고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삽니다. 마치 세상의 변화에 초연하고 달관한 듯한 모습이지요. 그런 묵묵함이 마음에 듭니다.
4연은 소나무에 대한 겁니다. 낙락장송이란 말도 있듯, 가지가 늘어진 소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변치 않고 꿋꿋하게 서 있죠. 주위에선 꽃이 피고 잎이 떨어져도 소나무는 한결같습니다. 변치 않는 곧게 뻗은 뿌리. 소나무 같은 친구가 있다면 굉장히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겠네요.
이제 5연입니다. 나무인지 풀인지 모를 대나무가 곧고 단단하다고요.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른데다가 나무 안쪽은 텅 비어 있지요. 본래 잘난 척하거나 뽐내는 사람을 보면 신경이 좀 거슬리잖아요. 그런데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기에 항상 겸허한 태도로 자기를 낮추고 내세우질 않습니다. 좋은 친구가 갖춰야 할 속성이지요.
이제 마지막 연을 보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달만큼 빛나는 게 있을까요? 온 세상이 적막으로 뒤덮여 있을 때, 달은 모든 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습니다. 무척이나 과묵하지요. 조용하게 나를 바라봐 줄 친구.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참고로 작가 윤선도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습니다. 간신의 횡포를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유배를 가게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임금을 모시지 않았다 하여 귀양을 떠나기도 했지요. 예송논쟁 땐 무려 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요. 85세에 눈을 감기까지 관직 생활을 했던 게 고작 8년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랬기에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 - 이 다섯이 그의 친구인 게 이해되지요.
어른이 되어 주위를 돌아봅니다. 친구라 해서 꼭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 때문에 되레 속상하고, 마음 아파할 일이 적지 않았지요. 이제는 책이나 꽃 등 나를 마음 편히 해 줄 존재가 좋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가히 친구라 부를 만합니다. 작품을 보니 새삼 깨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