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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Aug 14. 2024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까마귀 검다 하되>


황희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조선에서 영의정을 가장 오래 한 사람으로,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합쳐서 총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또한 세종대왕의 신임받는 재상이었지요. 그의 여러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살펴 봅니다.      


황 공은 국가적인 대사에만 관심을 가졌고 집안일에는 무관심했다. 한 여자 종이 들어와서 호소하기를, 어느 여자 종과 싸웠는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이에 황 공은 “네 말이 옳다.”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그녀와 싸운 또 다른 여자 종이 들어와 앞의 여자 종에 대한 나쁜 점을 호소했다. 황 공은 역시 “네 말도 옳다.” 하면서 내보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조카가, “숙부님은 한쪽이 옳으면 한쪽이 그른데 어찌 다 옳다고 하십니까” 하니 황 공이, “네 말 또한 역시 옳다.”고 말하고,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 「송와잡설」    


     

“네 말이 옳다”라는 말에 반박할 상대는 없습니다. 황희가 최장수 정승을 역임한 이유를 알 수 있지요. 실제로 황희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고, 강직하고 냉철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완벽한 인물도 아닙니다. 아들과 사위가 저지른 뇌물수수죄를 감싸는 등 물의를 빚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기도 했지요. 청백리라는 그의 특성이 후대에 포장된 이미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 없는 사람은 없지요. 그렇기에 차라리 장점에서 배울 게 있나 생각해 봅니다. “네 말이 옳다” - 현실에서 이런 말 하기 얼마나 어렵던가요? 더불어 이 말을 보면서 한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조차 거믈소냐

아마도 것 희고 속 거믈손 너뿐인가 긘가 하노라

     

까마귀 겉모습이 검다고 해서 백로야 비웃지 마라

겉이 검다고 해서 속까지 검겠느냐?

아마도 겉이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까마귀와 백로가 나옵니다. 글쎄요, 대부분은 까마귀보단 백로를 좋아하겠지요. 새하얀 백로는 순결함과 지조를 상징하지만, 검은 까마귀는 왠지 불길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선 그렇지 않다고 하네요.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직(李稷)은 1362년 고려 말에 태어났습니다. 16살이란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전교부령, 예문제학 등을 거치며 출셋길을 달렸지요. 그런데 1388년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역사를 바꾸는 물줄기이자 분수령 - 위화도 회군이었지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는 결국 혁명파 쪽에 몸을 맡깁니다. 1392년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데, 이직은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했습니다. 그 공으로 성산군에 봉해지고, 조선을 대표하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를 향한 세상의 눈빛은 싸늘했습니다. 특히 지조와 절개를 강조하며 조선 건국에 협조를 거부한 고려의 충신(忠臣)들은 그를 변절자라 비난했지요.      


그 상황에서 이직이 쓴 게 바로 이 작품입니다. 작가는 백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시를 씁니다. 까마귀 겉모습이 검다고 비웃지 말라는 거죠.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진 않으니까요.


다소 공격적이기도 한 이 시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오히려 백로입니다. 백로가 겉으로는 순결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정말로 표리부동한 존재는 백로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까마귀는 자기 자신이고, 백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고려의 충신을 의미하지요.     


겉으로는 우국지사인 척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고려의 유신들을 이직은 못마땅해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거기에 따라야 하는 법. 언제까지 고리타분하게 그러고 있을 텐가!’ 그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이 시는 어떤 면에서는 자기정당화입니다. ‘나를 욕하는 너희들이 사실은 더 위선적인 놈들이거든?’이라는 의도가 담겨 있거든요. 작가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따라야 하는 법이니까요.


참고로 그 후로 이직의 삶은 잘 풀렸는데요.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 그는 이방원을 도와 태종 등극을 돕지요. 한때 귀향을 떠나기도 하지만, 이후로 순탄한 벼슬길에 올라 결국 1424년에는 영의정까지 오릅니다. 황희처럼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에 오른 셈이죠.       






저는 젊을 때 다른 이를 많이 지적했습니다. 나와는 다르고, 뭔가 맞지 않다고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이렇게 지적하는 건 쉬웠지요. 게다가 남을 지적할 때, 나는 올바르고 올곧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만족감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봅니다. 백로의 지적도, 까마귀의 항변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사람마다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다르니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부정하고 현실의 이익에 영합하는 행태를 저 역시 싫어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정치, 종교, 이념 등 갈등을 일으킬 논쟁거리는 세상에 넘쳐나지만, 기준은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으로 모든 걸 가치 판단할 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더욱 와닿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내 주장만 할 필요도 없고, 상대를 굳이 설득하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를 설득하려 할 경우엔, 반대로 나도 설득될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 또한 생각합니다. - “나도 맞고, 너도 맞다.” 백로와 까마귀, 더 나아가 모든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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