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보는 마음2. AGI 논쟁 : 나 대신 지성을 바라는 욕망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두고
우리는 계속 상상합니다.
어떤 이는 완벽하게 공정한 존재를 기대하고,
어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걱정하며,
또 다른 이는 새로운 문명의 도약을 꿈꿉니다.
어떤 미래는 평화롭고 안정적입니다.
어떤 미래는 통제와 감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미래는 인간의 역할이 줄어든 세계를 그리고,
어떤 미래는 인간의 지성이 더욱 확장된 세계를 상상합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아직 모르니까요.
너무도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게 있다는 불안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이토록 대답이 다양한 것은,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익이라고 여기고,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엇을 옳다고 판단하고,
어떤 미래를 멋지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AGI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AGI 논쟁은
하나의 정답을 향해 수렴하지 않습니다.
그 논쟁은 각자의 세계관이 서로를 비추는 장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성을 대신해 줄 존재를 상상하면서도
그 상상 속에 자신의 기준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성을 외주화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지성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더 안정적인 판단을 원합니다.
그러나 선택의 책임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더 도덕적인 시스템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도덕이 우리의 의도를 넘어서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 모순은 약점이 아닙니다.
그 긴장 자체가 지성의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AGI 논쟁이 활발하다는 사실은
불안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성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어떤 세계가 더 나은가?”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AGI가 등장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입니다.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지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성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기준을 다시 묻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논쟁 속에서 시험됩니다.
[프랑켄슈타인] 에서는 오만한 과학의 그림자를 보았고,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는 지배와 반항의 역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변종]과 [터미네이터]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파괴성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그 거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아직 지성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경계에 머무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지성을 가지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지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어떤 기준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AI로 보는 마음 2. AGI 논쟁 : 나 대신 지성을 바라는 욕망
2-1. AGI 논쟁은 왜 엇갈릴까 -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대와 두려움
2-2.우리는 정말로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바라는걸까 - 능력이 아닌 안심을 바라는 마음
2-3. AI의 지성은 계산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근거
2-4. 우리는 왜 지성을 외주화하고 싶어 할까요 - 절대적인 객관성에 대한 기대
2-5. 추천 알고리즘은 왜 지성처럼 느껴질까 - 이유를 대신해주는 알고리즘의 유혹
2-6. 완벽하게 도덕적인 AI에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 신과 같은 인공지능을 마주한 인간의 불안
2-7. 위대한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는 멈추어 생각할 수 있을까? - 빠르고 궁극적인 답 앞에 흔들리는 마음
2-8. 인공지능 시대, 우리의 질문은 계속될까? - 답을 넘어 질문으로 향하는 인간의 욕망
[ “빛이 있으라.”
궁극적인 인공지능은 우주의 마지막 질문에 답하며
창조주와 같은 위치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한 인간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 최후의 질문, 아이작 아시모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