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나는 생각한다”로 충분할까?

― 게임으로 마주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궁금증

오랫동안 지피티를 사용하다가 최근에 클로드를 시작으로 여러 챗봇을 비교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성능이 매우 빠르게 발달한다는 점입니다.

처음 지피티를 쓸 때는, 제가 스토리텔링 강의에서 자주 사용하는 '영웅의 12단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12단계로 나누기는 했지만, 어떤 성장도 변화도 없는 평이한 내용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영웅의 12단계에서 중요한 내면적인 성장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구현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소설까지 갈 수준은 아니지만, 줄거리 단계만으로는 충분히 합격점을 넘어섭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인간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듯, 인간이 '일에서 살아갈 보람을 얻는 존재'라면,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보람을 얻어야 할까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다른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정말로 인간은 '일에서 보람을 얻는 존재'일까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은 일 하나만으로 논하기에는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것으로서, 무엇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의 존재론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한가지 문장이 떠오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명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의심할 수는 있어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논리. 사유는 곧 존재의 증거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문장이 나오던 시기에는 인간만이 생각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인간 이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심지어 돌고래는 아이의 지능을 넘어선다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인간을 넘어선 계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 이제는 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바둑을 두고 논문을 요약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물어보게 됩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돌고래는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똑똑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3번째입니다.


생각한다는 것만으로 인간은 구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말이지요. 흔히 생각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능동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배가 고프네. 밥 먹어야지.'

'졸리네. 자야지.'

'심심하게. 게임하자.'


물론,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행동도 존재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무의식적인 반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프로그램이나 기계에서 일어나는 피드백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는 항상 놀고 싶어하는 법입니다. 심즈에서도 그런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죠.


[심즈(The Sims)]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미국식 가정집을 무대로 한 가족의 일상을 체험하는 게임이죠. 이 게임의 캐릭터인 '심'들은 기본적인 욕구를 갖고 살아갑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화장실을 가거나 합니다. 심지어 '놀이'에 대한 욕구도 있어 TV를 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찾아온 이웃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죠.

그런데 이 과정, 즉 욕구에 따라 반복되는 루프는 플레이어, 다시 말해 인간이 별도로 개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작동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보여줍니다. 처음에 일자리를 얻을 때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자동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따금 회사에서 문제가 생길 때 선택을 통해서 해결하지만, 심들이 살아가는 것에 우리가 뭔가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플레이가 없다면 그것은 게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물처럼 먹고 자기만 반복한다면 인간처럼 보이지 않겠지요. 그래서 개발자들은 여기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를 추가합니다.


바로 '야망'입니다.


야망 확장팩이 나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심즈도, 개발자도, 그리고 우리도 야망이 있으니까요.


'그림을 1장 그리고 싶다.'

'친구를 10명 사귀고 싶다.'

'더 큰 텔레비전을 갖고 싶다.'


동물적 욕구와는 다른, 인간으로서 달성하고 싶은 무언가가 주어지며, 플레이어는 이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피곤한데도 밤을 새워 파티를 즐기거나, 배가 고픈데도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야망을 달성하면, 또 다른 야망이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다시금 그 야망을 어떻게 실현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야망'이라는 요소 덕분에 [심즈]는 단순한 '심즈라는 동물을 관찰하는 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욕망과 관계가 뒤섞이는 사회성 게임, [시트콤 게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진행됩니다.

어떤 플레이어는 심즈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중시하며, 어떤 플레이어는 직장에서의 성공을 노립니다. 또 어떤 플레이어는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체험을 즐기게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일에 실증을 느끼고 심즈를 괴롭히는데 열중하는 플레이어도 등장합니다.


심즈를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 네. 인간에겐 여러 태도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최적의 결과를 찾아내는 구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게임입니다. 능력이 아닌 태도로서 삶을 바라보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태도가 플레이어에게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즈]는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게임입니다. 심들은 허기나 피로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캐릭터들은, 때로는 해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고 선택하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특히 친구들과 만나서 뭔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싸우기도 하는 모습에서는 '인간성'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심들을 우리는 과연 인간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같은 존재, 혹은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을 지닌 인공지능, 즉 일반 인공지능(AGI)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브런치북 [AI에 바라는 인간의 마음]에서 저는 이러한 AGI에 대해서 사람들이 바라는 마음을 '나 대신 지성을 바라는 욕망'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이 나 대신 완벽하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바람이라고 말이죠.

기본적으로는 동물적 욕구로 움직이지만, 이따금 인간적 야망을 품은 것처럼 행동하는 심들은 이러한 기준에서 충분히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성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과연, 우리가 AGI에 바라는, '인간으로서의 지성'이란 무엇일까? 라고 말이죠.


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됩니다. 이 말만으로, 과연 인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AI로 보는 마음. 인공지능 시대, 인간 존재론

1. AI 시대, “나는 생각한다”로 충분할까? ― 게임으로 마주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궁금증


[ 인간처럼 보이는 여러 인공지능 캐릭터들. 이들은 먹고 자고, 심지어는 교류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 ( The Sims 4 / Max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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