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타이파이터, 제국군의 영광에 취한 마음

— 하지만, 무언가 이상해졌다

저는 스타워즈를 좋아합니다. 제다이 옷을 입고 강의한게 한 두번이 아니니 말할 필요도 없지요. 스타워즈라면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제가 스타워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조금 특별합니다. 바로 영화가 아니라, 게임에서 시작되었죠.


타이파이터(Tie-Fighter)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타이파이터, 타이 전투기는 영화에서 악의 세력, 제국군이 다루는 독특하게 생긴 전투기입니다. 우주 공간에서 무언가를 찢는듯한 굉음과 함께 날아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죠. 게임 [타이파이터]는 바로 그 제국군의 전투기를 조종하는 게임입니다.

스타워즈에서 제국군이라면 그냥 악당, 심지어는 악마라고 불러도 좋을 존재입니다. 설명을 처음 들은 사람도 '스페이스 나치'라고 대번에 말할 만큼의 존재. 바로 그 악당측 조종사로 게임을 진행하는 겁니다.


처음에 느낀건 무진장 불편하다는 겁니다. 타이전투기는 주인공이 타는 엑스윙에는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방어막이 없습니다. 애써 적기를 부셨는데 그 파편에 부딪쳐 죽을 만큼 약해 빠졌죠.

'아니 이런 전투기를 타고 싸우라고? 제국군은 사람을 뭘로 보는 건데?'


이런 생각도 잠시, 저는 이내 타이파이터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강력한 '개량형 타이'를 타고, 매력적인 지휘관 스론 제독의 지시로 다스베이더경과 함께 우주를 질주하며 반군 전투기를 유린할 때면, 뭔가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기분이 느껴졌죠. 고양감. '나는 위대한 제국의 전사다!'

그래서 이런 매력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타이파이터'가 CD-ROM으로 다시 나왔는데, 여기엔 황제 폐하와 다스베이더경, 그리고 스론 제독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죠. 그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는 이 작품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더 없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막을 달아서 소개하기로 했죠.


딴 따다단...하는 스타워즈의 전통적인 인트로가 나오다가 갑자기 제국군 테마로 바뀌면서 글자가 올라갑니다.


image.png 같은 인트로인데, 음악이 바뀌면 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질까요?



Rebel Terroriests, aided by spies and tratiers within the Empire,

struck a cowardly blow at the new symbol of Imperial Power...

The Death Star!


멋진 문장이 나열되고 저는 짧은 영어로 열심히 번역했습니다.


제국 안에 있는 스파이와 배신자의 도움을 받은

반란군 테러리스트는 비겁하게도

새로운 제국 힘의 상징... 데스스타를 파괴했다.


음... 뭔가 부족하네요. 조금 수정했습니다.


제국에 '숨어든' 스파이와 배신자의 도움을 받은

반란군 테러리스트는 '비열하게도'

새로운 제국 힘의 상징... 데스스타를 파괴했다.


이제야 뭔가 그럴듯 해 집니다. 이렇게 바꾸고 보니, 제국의 위대함과 그에 반대되는 반군의 느낌이 매우 잘 전해집니다. 그렇게 3분에 걸친 영상을 번역하는데 한참이 걸렸고, 저는 자막을 넣어서 제 홈페이지에 소개했죠. 당시엔 유투브가 없었으니까요.


image.png 제국의 영광에 취하면, 이런 모습도 괴롭지 않겠지요?


그렇게 흥분해서 올리고 났는데, 어? 갑자기 뭔가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제국군은 악당 아닌가요?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제국군의 위대함'에 열중하고 있을까요?

잠깐 머리를 식히려고 스타워즈를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전에 비디오 테이프를 사두었거든요.


과연... 제국은 악당 맞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걸렸습니다.

오비완 케노비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레아 공주가 말합니다.


"반란군의 생사가 걸린 군사 기밀을 알투 안에 저장했습니다."


'어? 반란군이라고? 그거 내가 타이파이터 번역할때 쓴 말 아냐?'


그래요. 잠시 제국군의 영광에 취한 저는 영화의 주인공측을 '비열한 반란군'이라고 불렀습니다. 당당하게 나서지 않고 해적이나 배신자와 손잡고 비겁하게 기습하는 적이니까요.

하지만, 레아는 바로 그 세력의 일원이잖아요? 왜 자신을 반란군이라고 부를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일본의 야쿠자는 스스로를 야쿠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마피아도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그 표현 자체에 경멸의 부정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현에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이것은 단순한 단어 선택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선택하는 순간,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함께 따라옵니다.


Rebel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두 가지 결이 있습니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반란군이 될 수도 있고, 혁명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국의 시점에서 보면 반란군입니다.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보면 혁명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는 반란과 혁명 두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막은 제국군이 쓰는 표현과 레아 공주가 쓰는 표현을 같은 단어로 처리했습니다.

시점이 사라진 겁니다. 쉽게 나올 수 있는 실수입니다. 사실 저도 타이파이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image.png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편에 서면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 결과, 한국에서는 스타워즈의 Rebel Alliance를 무조건 반란군이라고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단어 하나가 시점을 결정하고, 시점이 세계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자신들이 만들어진 나라의 언어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어로 입력해도 지피티는 영어로, 딥시크는 중국어로 번역하여 검색하고 추론합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의미로 단어를 수렴합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은 그 단어에 맞추어 고정됩니다.


만약 AI가 '타이파이터' 오프닝을 번역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저보다 정확하고 매끄러운 문장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럴듯한 문장으로 사람들을 매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비열하게도'라고 느꼈던 그 순간의 마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국군의 오만함과 분노, 그 이면의 두려움은 과연 전달될 수 있을까요?



... 라며 게임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쩌다 인공지능으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제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image.png 제국의 힘이 마음에 드나요? 그렇다면 이 게임을 해 보세요.


참고 링크 : 스타워즈 타이파이터 오프닝 (Star Wars : Tie Fighter Opening)

- 이 당시에는 표현이 제국의 영광이 다소 약해졌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인문학. 인간의 마음과 세계관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문화와 사회, 창작 작품에 담긴 마음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관을 통해 태도와 지성을 생각합니다.

이 마음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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