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숙한 단어에서 마주하는 어색함
최근 신화와 종교에 대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신화와 종교를 설정으로 보는 대신, 사람들의 마음과 얽힌 이야기로 바라보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콘텐츠 수업에서 SF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맨 프럼 어스〉라는 영화를 학생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석기 시대부터 살았다는, 자기가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 이야기. 배경은 현대의 평범한 거실. 우주선도 로봇도 외계인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꽤 몰입감이 있는 작품입니다. 학생들도 꽤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재미있게 봤는데요. 이게 SF하고 어떻게 연결되죠?"
저는 그 순간 멈칫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SF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SF인지 설명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SF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우주선, 로봇, 외계인. 뭔가 멋지고 거창한 장면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함께 따라 옵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만, 조금 어렵지 않을까?
SF&판타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이런 질문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SF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너무 어려워 보이지 않은 걸로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입문작을 찾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SF는 처음부터 어렵다는 전제를 달고 오는 걸까요.
SF는 Science Fiction의 줄임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SF 팬들 사이에서 오래된 논쟁이 있습니다. 공상과학 대신 과학소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전에 SF 강의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신문 같은 데서 공상과학이라고 쓸 때마다 반발하는 팬들이 있고, 과학소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때 청중 한 분이 말했습니다.
"뭐가 더 어려워 보이는데요."
저도 솔직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과학소설이라는 말을 들으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과학 강론을 늘어놓는 소설 같은 인상이 들었습니다. 장르를 가깝게 만들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Science Fiction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Science라는 단어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으로 번역됩니다. 그래서 뭔가 복잡한 이론이나 공식을 외워야하는 것처럼 여기죠.
하지만, 영어에서 Science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 호기심은 수많은 분야에 작용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세상이 왜 이런가?'라는 것에 대해 특히 호기심을 품었습니다. 왜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까? 왜 비가 내릴까?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인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해 왔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중 많은 이는 그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 가령 '신'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을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인 신화를 만들고, 나아가 신을 숭배하는 신앙과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여러가지 상상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를 여러 방법으로 검증해 나갔습니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틀리면 수정하는 사고의 과정.
Science는 바로 이러한 질문의 방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E=MC² 같은 무수한 공식과 이론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를 때는, 종종 이 과정이 아니라 그 결과만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외우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SF를 보려면 과학을 배워야 하나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들었을때. 저는 말했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 지식이 있다면, 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SF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그것을 알면 좀 더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는 뜻으로 말했지만, 사실 저 자신도 'Science'가 아닌 '과학'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Science Fiction의 Fiction은 본래 '허구', 또는 '상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Science Fiction은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만든 상상', 간단히 줄이면 '과학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cience'가 아닌 'Fiction'에 방점이 있고, 그래서 SF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이야기입니다.
SF에는 종종 공식이나 이론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례로, SF에서는 초공간 도약(Hyper-Space Jump)이나 워프(Warp) 같은 각종 우주 여행 기술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과학적 기술로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해 밖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SF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미국의 드라마 [스타트렉]은 미국인에게 이상적인 미래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구로서 발명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례로 '스타트렉에서 예언한 발명품' 같은 식으로 검색하면 무수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타트렉]의 제작자들은 무언가 대단한 과학 지식을 알고 있다.'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워프 엔진은 어떻게 작동하나요?"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에 대해 제작자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아주 잘 작동합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제작자들 역시 그러한 답변을 바란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답한 것은, '스타트렉'이라는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있어서 워프 엔진의 원리 같은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워프 엔진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우주로 나가서 서로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워프 엔진이 존재한다면, 교역 경제는 어떻게 될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러한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그가 물리학이나 우주공학 같은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스타트렉]의 팬으로서 그러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그가 지닌 경제학적 이론과 지식으로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어떤 상상이 있을때, 내가 가진 무언가를 통해서 그 상상이 펼쳐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결과 [스타트렉]처럼 이야기로 나올 수도 있고, 폴 크루그먼처럼 경제학 논문으로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That's not scientific"이라는 영어 문장은 "과학적이지 않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이 문장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도달한 결론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것은 '비과학적인 것', 다시 말해 과학 이론이나 지식과 맞지 않는 무언가라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학적인 이야기’에 대한 기준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과학자 분께서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가 SF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실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그렇다고 했죠. 흥미로운 의견이지만, 전혀 Science 같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분명히 두 이야기의 기본적인 뼈대는 다양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럴 수도 있다'라는 상상이며, 그 상상 중 많은 부분은 실제 과학 지식에서 거리가 있습니다.
가령, 〈인터스텔라〉는 당시에는 아직 보지 못한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매우 아름답고도 그럴듯하게 추측했습니다. 나중에 블랙흘을 실제로 촬영했을때, 영화 속 장면과 너무도 닮아서 놀랐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인 웜홀을 통한 우주 여행이나 블랙홀 내부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딸에게 정보를 전하는 장면 같은 것은 모두 현대 과학 기술의 바깥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도 '비과학적인 허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허구라고 해서 '웜홀이 있다면 이러한 여정이 가능하다'거나 '블랙홀의 내부의 시공의 변화로 인하여 이 같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다'라는 상상 자체는 충분히 과학적으로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Scietific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흥미로운 점은, Science를 가장 깊이 다루는 사람들일수록 SF를 ‘과학 이론’의 범위 안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Science라는 방법론이 아니라 학문 체계와 그 체계를 이루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 속에서, 그 체계 안에 있는 것만 SF로 읽히게 된 셈입니다.
어쩌면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번역어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SF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질문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SF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Science라는 단어를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질문의 방식을 놓쳐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그 학생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SF하고 어떻게 연결되죠?”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맨 프럼 어스〉는
“만약 죽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질문의 방식이 바로 우리가 Science라고 부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그 단어에 대한 태도를 먼저 만들어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평범한 거실의 대화. 그 이야기는, 아주 먼 곳까지 이어집니다. ]
(Man from Earth / Anchor Bay Entertainment, Shoreline Entertain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