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 같은 게임 시리즈에서 만난 다른 마음들

— 게임에서 마주한 기묘한 감각의 깨우침

1990년대 중반, 저는 타이파이터라는 게임을 했습니다.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제국군 조종사가 되어 싸우는 게임이었습니다. 제국군은 스페이스 나치니까 악당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입장이 되어 진행하다 보면 반란군이 교활하고 질서를 해치는 집단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게임 자체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악당이 주인공이 되는 기묘한 감각. 위치가 달라지면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각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비슷한 시기에 했던 다른 게임 덕분입니다.


31세기, 미래의 전쟁이지만, 여기선 뭔가 독특한 친숙함이 느껴집니다. 이 감각은 대체 무엇일까요?


[멕워리어2]는 거대 로봇 배틀메크를 조종해 싸우는 게임입니다. 배경은 먼 미래의 우주. [배틀테크]라고 불리는 시리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임은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진행합니다. 클랜 울프와 클랜 제이드 팰콘. 처음에 클랜 울프로 시작했는데, 인트로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지구로 돌아갈 권리이자 의무가 있다. 우리에게 약속된 땅이다.”


우주 배경의 게임에서 ‘약속된 땅’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순간 멈칫했습니다. 뭔가 십자군 같았기 때문이죠. 당시 저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뭔가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이겠지,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클랜을 플레이하면서 다른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언가 이익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구로 귀환하는 행위는 이들에게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무언가였습니다. 플레이하는 내내 내가 싸우는 것이 정당하고 옳고 멋지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게임이 그 감각을 만들어냈습니다.

클랜 울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클랜 제이드 팰콘으로 진행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자부심이 펼쳐졌습니다.


“늑대들의 고집센 울부짖음도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다.”


같은 역사에서 출발한 두 집단이었지만, 각자의 신념과 자부심은 달랐습니다. 같은 대의를 가졌어도 그것을 느끼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진영을 선택하던지, 그들만의 신념과 이상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이 좋은 편일까요?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에 같은 시리즈의 외전도 해 보았습니다. 우선, ‘고스트베어의 전설’이 있습니다. 여기선 또 다른 클랜 고스트베어로 여러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들만의 강인한 이상과 신념. 시점은 달라도 고결한 전사라는 느낌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외전, [멕워리어 2 머서너리즈]에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저는 클랜의 명예로운 전사였습니다. 세력은 달랐지만 신념이 있었습니다.


머서너리즈의 오프닝은 뭔가 달랐습니다. 당시 더빙판이었기에 더 선명한 느낌이었죠.

시작부터 전투가 벌어집니다. 한 사람이 경량형 배틀메크를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뒤에서 미사일과 빔이 날아오고 얻어맞아서 휘청입니다. 그때 지휘관이 나타나서 주인공에게 먼저 후퇴하라고 하죠. 그런데, 수송선에 주인공이 타자마자 조종사가 말합니다.

“방어 시스템이 망가졌다.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젠 뜨겠다.”

아직 들어오지 못한 지휘관이 외칩니다.

“안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조종사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그건 네 사정이다 사령관. 자네 정도면 충분히 오래 살았다.”

수송선은 떠나고, 홀로 남은 지휘관이 말합니다.

“이럴 수가. 너도 용병이었나.”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축하한다 신병. 자네는 크게 한건 한 셈이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멕워리어2에서 느꼈던 그 고결한 감각이 한 장면으로 무너졌습니다. 신념으로 싸우는 세계가 있는가 하면, 이익으로 움직이는 세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세계는 같은 우주 안에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 좋은 무기일수록 비쌉니다. 그렇다면 이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우주를 공유하는 또 다른 게임, [멕커맨더]는 배틀메크를 직접 조종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하나의 부대를 지휘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오프닝부터 달랐습니다. 지휘관이 강력한 적과 마주치자 부대 일부를 후퇴시킵니다. 홀로 남은 대원이 당황합니다. 지휘관은 강압적으로 명령합니다. “공격해라.” 압도적인 적에게 쫓긴 대원이 막다른 길에 몰리는 순간, 아까 후퇴시켰던 부대가 뒤에서 기습합니다. 적이 무너집니다.

조종사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지휘관의 시선에서는 보였습니다. 같은 전장이었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마무리하면서 한 대원이 말합니다.


“클랜 놈 하나 물리쳤지만, 잡을 놈들 아직 많이 남았죠.”


클랜 놈. 저는 그 단어에서 멈췄습니다. 멕워리어2에서 클랜은 신념을 가진 전사들의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너스피어 쪽에서 보면 그냥 클랜 놈이었습니다. 같은 존재를 두고 전혀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멕커맨더]에서는 [멕워리어 2]에서 제가 좋아했던 배틀메크 팀버울프를 ‘매드캣’이라고 부릅니다. 미친 고양이. 뭔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죠.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처음 보는 적의 병기에 이름이 써 있을 리 없습니다. 자기들이 부르는 대로 부를 뿐입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는가. 그 순간 어느 편인지가 드러납니다.


[기동전사 건담]에서도 지온군은 건담을 연방의 하얀 놈이라 부르고, 건담을 실은 전함 화이트베이스를 목마라고 부릅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는가. 그 순간 어느 편인지가 드러납니다.


멕워리어 시리즈의 주역처럼 연출되는 팀버울프. 오프닝에서 이 적이 나타났을때, 대원들의 당황한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근데 누가 매드캣이라 불렀을까요?


이후에도 배틀테크 세계는 계속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멕워리어 4 : 분노의 복수]에서 주인공은 권력을 노리고 가족을 죽인 친척에 맞서 싸웁니다. 주인공이 클랜과 싸우려 출전한 사이,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프닝에서 전에 있던 부대가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대원에게 대장이 말합니다.


“당연하지, 모든게 변했으니까.”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멕워리어 3]에서 클랜에 맞서 싸운 이너스피어의 전사들은 이제 자신들끼리 내전을 벌입니다. 복수는 완료되고, 정의는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속편 [멕워리어 4 : 블랙나이트]에서는 용병이 되어 전편의 주인공을 처단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작품을 볼 때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계에서 무엇이 이익인가.

무엇이 당연한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멋진가.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럴듯한가.


이 감각을 처음 느꼈을 때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같은 것을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마주했던 것은, 설정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즉 세계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무엇이 당연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멋진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과연 누구의 입장에서 본 것일까요.


신작에서도 우리는 멕워리어 2와 다른 시점에서 용병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수리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신념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참고 :

멕워리어 2 오프닝 https://youtu.be/nh8H5mLsqAQ

멕워리어 2 클랜 울프의 영상 https://youtu.be/tSlJQqM5GRw

멕워리어 2 클랜 제이드 팰콘의 영상 https://youtu.be/KooPGUsEWb4

멕워리어 2 머서너리즈 오프닝 https://youtu.be/X5ZYOYoD6Ko

멕워리어 2 머서너리즈 엔딩 https://youtu.be/h1qQhVOnFLw

멕워리어 2 고스트베어의 전설 오프닝 https://youtu.be/uuJR5duKfXk

멕워리어 3 오프닝 https://youtu.be/m9Hc8AvpgqI

멕커멘더 오프닝 https://youtu.be/xE0fCzEiGNc

멕커멘더 엔딩 https://youtu.be/ArwJ0g3qcCw

멕워리어 4 오프닝 https://youtu.be/yp_lFXsyZ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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