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udes Op.25 : No11, Etude in A minor
어렸을 적 피아노 교습소를 다녔었다.
내 나이 또래 애들이 모두 그러하듯, 하농부터 시작하여 체르니를 거쳐 바흐까지 다다랐을 때 마치 4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끝마쳤다는 듯 그 이상의 학원을 계속 다니는 친구들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엄마들끼리 무언의 약속을 나눈 걸까. 하지만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직접 어머니의 생각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다니기 싫다거나 이러한 의사표현을 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그저 보내니까 다녀야 한다는 의무감에 열심히 연습출석지에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워나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진짜 왜 그러고 다녔을까. 일종의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종용하는 유행이었을까.
암튼 나는 이때부터 굉장히 소심하고 누군가 시켜야 무언가를 하는 굉장한 수동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에는, 피아노 선생님이 연습해 오라고 했던 곡을 충분히 다 못해갔을 때가 있었다. 원래도 그 선생님은 마른 체형에 부스럭한 어깨까지 오는 머리스타일을 고수하시던 신경질적이나 고상한 스타일이셨다. 항사 원, 투, 쓰리를 있어 보이게 위원느, 투우, th뤼 하고 손을 흔드시던 분이셨다. 물론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지만 그 모습이 못내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 멍하니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런 내 표정은 자못 웃겼을 게다.
어쨌든, 할당 연습량을 채우지 못해 당연히 나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많이 헤맸고, 선생님은 화를 지그시 억누르시다가 내 엄지를 짚어선 "포르티시모!!" 하고 건반을 쾅쾅 내리치셨다. 문제는 없었다. 그다지 선생님의 짜증 비슷한 무언가의 감정을 무섭게 느끼거나 할 틈도 없었다. 그저 엄지가 무척 아팠다. 앞서 말했듯 나는 굉장한 소심쟁이였기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포르티시모(ff)를 내리찍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 엄지가 원래 다친 부위였다는 것이다. 뭐 때문에 다쳤는지 기억은 안 났지만 푸르스름한 연한 멍이 들어있었는데 그 손을 선생님은 마구잡이로 잡아 건반에 쾅쾅 내리쳤던 것이지. (물론 내 손가락은 푸르뎅뎅하게 부어올랐다)
나중에야 선생님은 네 손에 힘이 없는 이유가 다쳤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미안해하셨지만, 나는 그조차도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딘가 문제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감하게 지내왔던 것. 뭘 해도 크게 기뻐하는 법이 없었고, 감정표현도 그다지 굴곡이 없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선생님은 매우 미안해하셨지만 나와 엄마는 그러시냐 괜찮다 하며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오늘날의 피아노 학원 같았으면 학부모의 비난에 꽤나 속을 섞였을지도.
오랜만에 오래된 기억을 꺼내 곱씹어 보니, 새삼 내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좋은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