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린 나에게 바치는 노래
최근 알게 되어서 자주 듣는 노래가 있는데,
<잘 지내자, 우리>라는 노래.
특히 가사가 와닿아서 더욱 자주 듣는 것 같다.
마음을 다 보여줬던 너와는 다르게 지난 사랑에 겁을 잔뜩 먹은 나는 뒷걸음질만 쳤다
너는 다가오려 했지만 분명 언젠가 떠나갈 것이라 생각해 도망치기만 했다
같이 구름 걸터앉은 나무 바라보며 잔디밭에 누워 한쪽 귀로만 듣던 달콤한 노래들이
쓰디쓴 아픔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분명 언젠가 다시 스칠 날 있겠지만 모른 척 지나가겠지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난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었다고 용서해 달라고 얘기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까짓 두려움 내가 바보 같았지 하며 솔직해질 자신 있으니 돌아오기만 하면 좋겠다
분명 언젠가 다시 스칠 날 있겠지만 모른 척 지나가겠지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난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었다고 용서해 달라고 얘기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우리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누군가들은 지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겠지만
나 또한 처음에 들었을 때 이전 사랑했던 사람에게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변해버려서,
어렸던 시절의 감정이 먼저 앞서던 그때의 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어서 그런 걸까.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대학생 때는 항상 남들과 함께한 사진이 많은데
뒤로 갈수록 혼자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많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의 나를 조금씩 갉아먹거나
하나씩 죽여가면서,
어른이 되어가지 않나.
그래서 이 노래는,
풋풋하고 잘 몰라서 철 없이 굴었던 나를,
그런 나를 떠나보낸 지금의 내가.
한 켠으로는 그리워서.
지금처럼 생각이 많지도, 감정을 절제하지도, 성숙하지도 않았던
그때의 내가 한 번씩 생각나고 부러워서.
그때 나를 후회하기보다
하나의 나로 받아들이고,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실어 부르는 노래.
그래서 나 또한,
내가 죽였던 이수이가
미안하고,
한 번씩은 그때의 내가 되어보고 싶은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며
부르는 노래.
그래서 계속 듣게 되는 노래이자
입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노래이다.
새벽 02:02 am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잠들 순간이 다가오니, 침대로 이제 누워야 한다니,
눈을 감으면 내일부터는 4월로 살아가야 한다니.
아쉬움일까 먹먹함일까 두려움일까
무엇 때문에 잠들기가 이리도 어려운 걸까.
결국 누우려는 내 몸은 끌어당기는 물리적인 힘을 거부하고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일기를 작성하면 이 우울한 감정도 가라앉을까, 잠시 노트북에 그 감정을 전가할 수 있을까 싶어서.
오늘은 눈을 10시쯤 떴다.
일어나고 싶진 않았는데, 다른 층의 리모델링 공사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내부적으로 수리가 필요해 리모델링을 한다는데
아,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 자신을 아니 우리를 바꾸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하지 않는가.
나도 지금 나를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온통 흑색 아니면 흰색이었는데, 이젠 빨간색도 파란색도 그리고 주황색도 고르고 있으니까.
헬스장에 갔다. 그런 말이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집에서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헬스장을 가기 위해 나서는 그 근성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막상 헬스장에 오면 모두가 열심히 하는데, 집에서의 그 늘어짐을 포기하고 왔다는 게 그게 대단한 것.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지만 그게 가장 큰 부분인 것.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순간 잘못 봤나 싶었다.
환기를 해서인가? 하였지만 이내 생각하니 어제부터 실내 마스크 자율 조치로 변경되었다.
아_
쓰고 있던 나는 벗는 게 잠시 부끄러웠지만 이내 벗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거였구나. 운동하면서 마스크 없이 한다는 게.
처음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라 했을 땐 쓰는 게 싫었는데
이젠 많은 사람들이 벗는 게 어려워졌다.
너무 적응을 잘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와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 나면, 하루를 다 보낸 것처럼,
하루를 아주 열심히 산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노트북과 책을 챙겨서 오늘의 목표였던 카페에 방문했다.
고즈 녘 한 분위기에 이끌려 그 카페를 선정했다.
그냥 아메리카노보다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커피를 고르는 편인데,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카푸치노'라는 글자가 가장 눈에 띄었다.
가장 길어서일까 아니면 특색 있어서였을까.
아니, 그 카페의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렸다.
따뜻하면서도 밖에는 차들이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풍경과 네온사인의 간판들이
어딘가 부조화스러우면서 조화로운 게.
망설임도 없이 그 음료를 주문했다.
"시나몬 괜찮으세요?"
라고 여쭤보시는 직원분의 질문에 왜 나는 위로를 받았을까.
적혀있음에도 주문하는 사람을 한번 더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아서였을까 아니면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말에서 울컥한 걸까.
아, 나는 울고 싶었구나.
아니 괜찮지 않았구나.
내가 내 상태를 몰랐구나.
잠에 들려고 한다.
나는 매일 꿈을 꾼다.
누구는 생각이 많아서 잠을 잘 못 자서 꿈을 꾼다고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어제 꿈에 몇 가지가 기억난다.
좋은 카페가 있다며 안내받아 간 길은
새하얀 눈으로 전부 뒤덮어진 하얀 세상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진 않았음에도,
하늘도 땅도 나무들도 하얀색이었다.
처음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카페인가?라는 의문도 들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며 담소를 나눴다.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내가 밟던 것은 눈이 아니라
내 발자국을 맞춰 걷고 있던 것임을.
나는..
내 발자취를 찾고 있었다 꿈에서.
오늘 꿈에는
나를 만나야지
나를 만나서 나와 이야기를 해야지
그리고 나를 안아줘야지.
그렇게 나를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