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라는 변환점

비도 오고 해도 있어야 땅이 비옥해지는 법

by 이안


2016년.

사촌언니가 브리스톨에서 돌아왔다.

건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하던 언니는,

클럽을 다니는게 취미였는데

클럽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다면서

영국식 영어발음도 배울 겸 다녀오겠다고 떠났었다.


일년 후, 오랜만에 본 언니는

알게 모르게 이전과 다른 느낌이었는데

나만 느낀게 아니었는지

부모님께서 영국 어학연수 얘기를 먼저 꺼내셨다.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신다는 말에

울면서 가고 싶지 않다고 엉엉 울었던 나인데,

영국이라니.


처음에는 생각 없다고 하였지만,

어릴 때의 내가 그대로 자란 것 같아서,

왜 내가 어렸을 때 가기 싫어했는지 생각해보았다.


낯선 영어, 다른 인종,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

크게 그 세 가지 때문이었는데,

생각을 해보았다.


그걸 깨야하는 제 때가 지금이 아닐까.

사람 마다의 시간과 제 때는 다르다.

누군가 정해놓은 타임라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때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어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2016.3월부터 출국하는 6월까지

혜화역 앞의 외국인 영어 회화 학원을 등록하여

매일 6:30부터 3시간씩 회화를 늘리고자 다녔다.


6월 10일.

인천국제공항에 따라와주신 부모님.

한 번도 어느 특정 국가를 여행 외에 장기간으로 가본 적 없던 나라서,

출국장에 들어서며 인사할 때

그리고 문이 닫힐 때 눈물이 살짝 났었다.


12시간 정도로 직항 하는 아시아나 비행기.

생각보다 지루했지만,

도착하고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 심사만 2시간 이상

대기하면서 차라리 비행기가 나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리턴 티켓이 있냐는 직원분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계속해서 헤매다가,

번뜩 생각나서 올 때 구매했던 왕복행 티켓을 보여주니

입국이 허용되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

낯선 언어.

그리고 “Welcome Lee Su Yi”라는

종이를 들고 있는 택시 기사 아저씨.


런던과 브리스톨을 고민하다

런던에 가면 유흥거리도 많고 한국인이 많아

영어를 배울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언니의 조언 덕에

브리스톨로 정했었는데

택시를 2시간 30분 타고 가는 동안 기사 분과

5마디도 채 나누질 못했다:


등록된 홈스테이집에 도착하니

전통 영국식 집에 영국인 노부부가 날 맞이하러 나오셨는데

당황해서 영어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올라가니 옆 방엔

터키 친구, 스위스 친구, 이탈리아 친구

총 나를 포함해 4명의

친구들이 같이

살게 되었고,

나의 영어 발음은 그 중에서 제일 딱딱했다.

하핫


브리스톨 버스는

탑승하고 목적지를 기사님께 말씀드려

책정된 금액을 지불하던 형태였는데,

당시 어학원 친구들끼리

기사님께서 한 번에 알아들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척도였다.


매번 3번 이상 외쳐도 못 알아들으셔서

구글 맵을 보여주는 내 자신이 싫어서

학원 이후로는 테드 강의를 하루 2개 이상 듣고,

자막을 꺼둔 채 전체 받아쓰기 및

해석,

맨 마지막에는 자막 없이 강의를 다 이해할 때 까지

반복 학습을 하였고,

그렇게 2개월을 스파르타식으로 하였더니

영어 실력이 급증하게 되었다.


학원에서도 중급 반에 있다가

상위 반으로 교실이 바꼈고,

자격증 반으로 바꿀 것에 대해 먼저 오퍼를 받기도 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든 적이 없진 않았다.

학원 첫 날 느낀 인종 차별은,

화도 안나고 무기력함을 느꼈고


단순히 동양인이란 이유로

길을 지나가다 손가락질을 받으며 역겹다는 단어를

여러번 들었을 때는 하루 내내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질 못했다.


학원에서는

여자 친구들이 밥을 먹는다고 날 데려가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위스어랑 이탈리아어만 사용하다가,

다른 백인 친구들이 다가오자

그 때부터 웃으며 영어를 사용했고

용기 내어 한 마디를 내뱉었을 때

모두가 날 없는 사람

취급을 하였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차별에 대해 잘못되었음을 모르는건지.


꿈틀대고 싶었다.

밟을 수록 더 올라감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덕에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대해 공포도 있었지만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나서는,

브리스톨 대학 주관 언어 교환 프로그램,

배드민턴 동아리에 가입하여 내 스스로 친구들을 사귀고자 하였고,

브리스톨대 한인회에 연락하여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번은 Sainsbury 옆 Costa 카페에

영국인이 혼자 한국어를 독학하는 걸 보며

미친 척 하고 먼저 말을 걸었고 그 덕에

로저라는 친구와 현재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그 당시 가장 친했던 한국인 친구들 중 한 명은

London business school 에 석사를 한 뒤

런던 신한은행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고

한 명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 때 같이 놀았던 언니와

결혼식을 올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친했던 영국인들중 예안 이란 친구는

슈퍼마리오 처럼 콧수염을 하고 다녔고,

폴은 민호 오빠 누나를 소개 받아 결혼하여

부산으로 같이 들어와 살고 있으며,

로저는 약학대 편입에 성공해 약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마이클은 종종 한국에 영어 선생님

하러 들어와서 기타를 주로 치며 놀고 있고

톰은 날 돌봐주라던 줄리아 아줌마의 말을 무시하고

나를 친구들과 펍에서 술 약속이 있다며 데려가서는

내가 이제껏 들었던 영국 영어 중 가장 빠른 스피드로

대화를 나누어 간간히 몇 마디 알아들었는데

맥주의 힘인지 엄청 웃고 떠들었던 기억을 선사해준

친구.

해장하자며 스파게티를 해주었을 때는 살짝 슬펐지만..

현재는 영국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영국에서

정말 혼자 지내며

혼자 여행, 혼자 피크닉을 처음 시작해보기도 하였고

혼밥, 혼자 카페

혼자의 삶에 거부감이

사라졌던.


그리고 내가 나를 넘어섰던

가장 큰 시작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해리포터 촬영지인 옥스포드에 다녀왔던 점.

나의

최애 영화이자 인생 영화인,

해리포터 촬영지에 왔다고 느꼈을 때는

사실 조금 울었다

앞으로는

내가 목표로 잡아둔 것들을

하나씩 이뤄내면서

또 다른 눈물을 ㅡ

흘릴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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