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안아주셨을 때, 나는 울었다.

by 이안

2023.04.20


1월달 이후로 약 3개월만에 다시 찾은 고향인 부산.

토요일에 사촌동생인 형석이의 결혼식이 잡혀있어서, 겸사겸사 그 전에 내려와서

그 동안 못봤던 가족 얼굴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서

미리 내려오게 되었다.


이왕 내려갈 때, 어딘가의 최종 합격 소식이라도 같이 들고 올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가족 곁에 있다면 일말의 불안함도 덜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

서울의 홀로 있는 집에서 서늘한 냉기와 함께 그 기운을 이겨보겠다고 노래를 틀어놓아도

어쩔 수 없는 적막함과 고독함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부산행을 택했다.


아, 하필이면.

부산역에 도착하며 남천동의 xx 아파트로 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천역 다오기 직전에 사고가 발생해서 그냥 내리면 그만이었지만

사실 그 오르막길을 걸으며 캐리어를 끄는게 싫어서 택시를 탔던 거였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택시를 탄 의미가 없게 된 것 아닌가.

누가 봐도 택시의 과실이 컸다.

차가 엉켜붙는 대남로터리에서 무리하게 차선에 껴들려고 하다보니

뒷 차 역시 양보해주기 싫어서 차를 바짝 붙다가,

뒷 차가 그대로 직진해버려서 택시의 사이드미러와 함께 차문들이 그대로 부딪혔고,

한번도 내가 택시에 타서 이런 사고가 나본 적이 없었는데... 한숨과 함께 살짝 두통이 왔다.


아저씨는 속절없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 한 가운데에서 차주에게 소리를 지르며 미터기 요금이 계속 올라가는 것을 두었고

얘기를 할까 하다가도 사고에만 집중하는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결제부터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이미 천원이 사고현장에서 올랐기 때문에.


차를 길가에 세우시고는 카드를 건네받으시고 꽂더니

지불을 누르지 않으시고 내려버러서 금액이 계속 올랐다.

나도 이젠 화가 날 지경이 되어서, 카드를 뽑으려고 했다.

그걸 본 아저씨가 급히 차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보고

고의로 이러시는 건지, 아님 정말 모르고 저러시는 건지 살짝 어이가 없으려고 했지만

이미 금액은 사고난 시점부터 1,800원이 올랐던 상황.


다시 결제하자며 꽂으려는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반박하였다.

요금 계속 올랐는데 그대로 결제하실거냐고.

내가 보고 있는 줄 몰랐던걸까, 당황해하시더니 그럼 얼마로 결제하면 되냐길래

말문이 막혀서 그냥 결제하시라고 카드를 내밀었다.

부산이 생각보다 너무나 덥고 습해서, 이 길을 캐리어를 끌고 집까지 갈 생각에 안 그래도

열이 받칠 대로 받쳤던터라, 택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한껏 짜증난 내 얼굴 덕분일까, 험상궂어 보이는 인상 덕분에 아저씨는 600원을 내려 결제하셨다.


캐리어를 끌고 대남로터리에서 집까지 올라가는데 걸린 시간은 15분.

이미 땀이 흥건했고,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도 피할 수 없던 태양.

집에 도착하니 몽글몽글한 단발머리를 한 엄마가 "뚜이야~"하시며 쫄래쫄래 달려나오셨고

그 미소를 보자마자 갖고있던 짜증이 한 번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가족의 힘이구나, 이게 정녕 집이구나.





오랜만의 내 방.

이 방에서 나는 고등학생 때 부터 최근까지 지내왔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포근함이 밀려온다.

분명 더 이쁜 방은 서울 집인데도 불구하고 아늑함은 이 방만이 갖고있는 고유함.

엄마와 커피를 내리고 수다 타임을 가진 후 각자 방에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약기운 덕에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 새

아빠와 동생이 퇴근하고 올 시간.



내가 부산에서 일을 할 때,

2~3주에 1번은 꼭 가던 소고기 식당에 예약해두신 아빠.

아빠가 오기 전, 두근대고 걱정되던 내 마음과는 달리

아빠는 내가 생각하던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얼굴을 보니 사르르 풀리는 근심, 마음, 미움.

다시 한번 느낀 가족이란 애.


소고기를 굽겠다는 아빠를 말리며 내가 구워드렸고

항상 진로를 드시던 아빠는 내가 좋은데이를 좋아하는 걸 기억하시고는

좋은데이를 시키셨다.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덧붙이시며.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시더니

이 내 우리는 언제 다투기라도 했냐는 듯이 하하호호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근 3개월 동안 서로의 근황을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한 번에 털어냈다.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아빠가 신발을 신고 나오시더니

계단에서 나를 쎄게 꽉 안으시고

등을 쓰다듬어주셨다.

우린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빠의 등을 계속해서 토닥여드렸다.


아빠를 만나기 전,

엄마에게 최근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와 거의 15년을 같이 근무하셨던 분께서

그만두시게 되어, 새로운 사람을 구했지만

말 그대로 빤스런을 했다고.

금요일에 처음 출근하여 인수인계를 받고

주말에 갑자기 연락 와서

사고를 당해서 출근을 앞으로 못하겠다고.


취업을 하는 것도 힘든데,

사람을 구하는 것도 힘들구나.


아빠는 여전히

아빠의 일터 공간 속에서

치열하고 바쁘게 살고 계시고,

그런 와중에도 우리 걱정을 항상 안고 계시다고.


갑자기 기억이 났다.

이전에 아빠와 다툴 때,

아빠가 소리치듯 나에게 했던 말.

"아빠도 힘들다고!" 라고 하셨던 말이

그 순간 내가 하려고 했던 모든 말들을

입 속으로 삼키게 했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말이었기에.


그 한 마디를 내뱉기 위해서

아빠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참아오셨고 속으로 삼키셨을까.


나는 왜 그렇게 어렸을까,

철이 없었을까.


그런 아빠의 포옹을 받으며

속으로

'죄송했다' 고 연신 내뱉으며.

우리는 가게를 나와 넷이서 나란히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옆에는 익숙한 가게들의 네온사인들과

해변시장의 입구를 알리는 옵스 간판과

떡볶이집들을 지나쳐 넷이서 수다를 떨며

집까지 걸어왔고,

기분이 좋으신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너스레를 떠셨지만

이내 내 목이 상태가 좋지 않음을 기억하시고는 철회하셔서

나는 수화에게 등짝을 맞았다.


그 등짝과 그 웃음들이

아프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았다고 하면

내가 이상한걸까.


그 속에서 있으면

나의 근심이, 고민이, 걱정거리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그 감정이 좋아서

힘들 때 마다 찾게 되는 나의 가족.


하다 못해 평소에 믿지 않던 타로, 사주 같은 것들도

유료 결제하면서 까지 봤던 난데,

믿지 않으려고 한다.


될 대로 되겠지.

그게 카드 한 장 선택해서 점쳐질 거 였으면

세상 모두가 이미 부자가 되어있었을 거고

모두가 적성을 찾아 행복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응원해주려고 한다.


어떤 길을 걸어가도,

또 힘든 순간들은 찾아올 테지만

내가 나를 잃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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