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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mhell Aug 22. 2023

스타트업, 1인 디자이너, 신입의 휴가 (리미편)

스스로 기록했던 연차반차

첫 회사를 9월에 입사하고 5개월동안 연차나 반차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입사 3개월 동안은 수습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연차를 쓰지 않았고 나머지 2개월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어 2월에 연차를 내서 내려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나의 첫 연차였다.

1인 디자이너로 디자인 업무를 쉬지 않고 진행하다 보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꽤 잦은 야근과 퇴근 후에는 성장을 목표로 사이드프로젝트를 4개 이상 병행했었다. 거의 주말 없이 생활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친구가 있는 캐나다로!



목표일정은 5월로 정했다.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라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연차/휴가는 사실 직장인의 권리이다.

연차 내는 걸 두렵게 생각하거나 부담가지기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고, 그게 맞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뭐랄까.. 작은 책임감이 있었다.

스타트업의 1인 디자이너라는 위치는 나에겐 그랬다.

내가 작업을 잠시라도 쉬거나 일정이 늦어지면, 5~6명의 개발자가 일을 못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다들 이해해 주는 눈치였지만, 매일매일이 경주마 여섯 마리가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멈출 수 없는 레이스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연차를 내지 못했다. 사실 쏟아지는 일을 해치우느라 연차 낼 생각자체를 못 했다.

'힘들다,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못할 만큼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4월 22일,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 당시 회사 지원으로 회사 옆에 위치한 헬스장에서 PT를 받았다. 그래서 출근 전에 PT를 받고 회사를 가곤 했다. 그날은 PT시간에 늦어 택시를 탔었다.


초록불로 바뀌어 교차로 중간을 지나던 그때  

빠아앙-

하는 경적소리와 동시에 눈앞이 흐려질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타고 있던 택시 왼쪽에서 승용차가 튀어나와 택시를 박은 것이다.


놀란 기사님이 핸들을 틀었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다시 가로수에 박혔다.

그 찰나에 나의 유일한 밥벌이인 손목과 손가락 걱정을 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런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 살아있는 거지?'

짧은 생각을 끝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로에 서서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전에 대표님이 우스갯소리로 '교통사고가 나면 책임져주겠다. 나만 믿어라'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먼저 떠오른 사람이 '대표님'이었다.

당시에는 걱정과 우려보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대표님은 제주도 워크숍에 참석 중이셨는데,

전화를 받으시곤 여러 가지 해결 방향과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택시기사님과 통화하며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 필요한 서류와 정보를 확인해 주셨다.



(의식이 있다면 꼭 사고낸 차량의 보험사측 신고(?)번호를 받고 병원에 가야한다..!)



현장에서 확인할 사항을 모두 체크했고, 나는 경찰분의 조언으로 119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동 중에 부모님과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남자친구가 응급실로 달려와줬다. 이런 소동을 거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일을 쉬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4월 22일 그날은 다행히 금요일이었다. 연차를 하루만 내도 주말 동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를 했던 것 같다. 이게 나의 두 번째 연차였다.



모든 일이 끝나고 진정되었을 때, 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한 달 뒤, 5월.. 이때 휴가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과 교통사고, 1인 디자이너의 업무량...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휴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틈이 날 때마다 병원진료를 받으러 갔고, 휴가일까지 연차를 참고 버텼다.


그렇게 휴가일이 되었고, 회사분들의 양해를 받으며 여행길에 올랐다.

첫 휴가였다.

4.5일의 연차를 쓰며 떠나는 이 휴가는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트북을 챙겨 떠났다.

첫 1~2일은 메신저를 틈틈이 확인했었는데, 나의 걱정과 달리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때의 심정은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한다!라는 과장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회사는 잘 굴러갔다.

그 생각을 끝으로 회사와 나를 분리시킬 수 있었다. 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말까지 총 10일간의 휴가는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업무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었다.

회사가 아닌 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회사는 나를

그리고 나는 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무언가를 책임을 지려면 적어도

스스로가 건강해야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데, 먼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자꾸 눈앞의 장애물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오늘의 꿀팁

다칠 땐, 회복해야 하고
지칠 땐, 쉬어야 하고
힘들 땐, 주변에 알려야 한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 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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