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라떼가 아닙니다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불가능은 없다’, ‘하면 된다’ 던 시대, 유행했던 농담이 있었습니다. 집채만 한 코끼리를 작은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1단계, 냉장고 문을 연다. 2단계, 코끼리를 넣는다. 3단계, 냉장고 문을 닫는다’는 답을 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킬러문항을 없애는 3단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려고 집어넣은 물과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로 걸러내고(1단계),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선 물질이 포함된 오염수에 대해서는 기준치 이하가 될 때까지 바닷물을 섞어(2단계) 바다에 버리겠다(3단계)고 발표했습니다. ‘오염 물질은 바다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 판단일 텐데, 오히려 우리 정부는 과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며 거들고 나섰습니다.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서 바다에 버리는 것이 문제가 없다면 바다에 버리지 못할 물질이 있을까 싶습니다.

최근 일어난 ‘킬러문항’에 대한 문제 해결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수능 5개월을 앞두고 일어난 논란은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시모집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발표와 무척 닮았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은 접어두고 당장의 여론 달래기에 집착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30년을 이어온 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문제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것입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마디로 느닷없이 ‘킬러문항’이 수능의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드러났습니다. 이를 소홀히 했다는 까닭으로 교육부 담당 국장과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킬러문항을 없애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못했냐는 질책이겠지요. 선발을 위한 평가에서 변별력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답률이 극도로 낮은 문항을 필요악이라 생각했겠지요. ‘킬러문항을 없애라’는 대통령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가능한지,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가장 쉬운 답 ‘킬러문항을 없앤다’는 3단계 답을 그만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요.


학력을 올리는 3단계

‘교육학’에서 ‘학력’이라고 하면 단편적인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삶과 연결되고 더 깊고 넓은 지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흥미와 태도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교육과정으로 약속한 내용을 공부하고 학습한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리고 평가 결과 드러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르친 사람이 책임 있게 피드백하는 것이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학습의 단계입니다.

일제고사식 전수평가를 하면 세심한 지원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반복적인 문제 풀이 수업으로 평가기준을 가까스로 통과하게 되면서 여러 학습적 지원에서 소외될 염려가 크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학습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평가 단계로 넘어가면 시험이라는 것이 성장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열패감과 수치감을 심어 주고 배움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큰 고민입니다.

그런데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시험을 보지 않아 학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시험이라는 가장 저렴한 방식 -공부를 시킨다, 시험을 본다, 성적이 올라간다- 으로 학력을 높이겠다 약속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학력이 높아졌다’는 결과뿐이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가 시험에 매몰되는 순간 ‘평가는 섬세한 도구’라는 조언은 무시되고 ‘시험 문제’가 ‘수업의 내용’을 지배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그리고 문제풀이 수업이 성적을 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업 형태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가 아닙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산업화 시대의 표준화된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습의 이유와 방법, 내용과 시기,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까지도 자신들에게 맞게 고려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표준화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생 개인별 교육과정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인권이란 보편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특별함이 결핍이 아닌 고유함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각각의 학생 성장에 주목하는 교육은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더 많은 자원이 지역사회와 학교, 학급으로 들어가야 가능합니다.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 그동안 쌓아 올린 공동의 사회·경제적 부를 어디에 먼저 써야 하는지 답은 명확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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