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의 작은 방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최근 교육계의 어려운 상황으로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연수를 미룰 수 없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모두가 특별한 교육연구원'의 일본 탐방 연수 내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날(8월 3일)은 일본의 한 선생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1986년 초임 역사교사였던 '다카하시 마코토'. 선생님은 지역의 ‘미쓰비시’ 비행기 공장에 끌려왔다 안타깝게 숨을 거둔 조선의 소녀들을 찾아냈습니다.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을 믿고 동해를 건너온 소녀들이 노동에 시달리다 지진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KakaoTalk_20230809_105031530.jpg 타카하시 선생님과 민주회관 앞에서

이때부터 선생님은 동료교사들과 '아이치현 조선인 강제연행 역사 조사반'을 만들고 소녀들의 이름을 찾아내고 그곳에 추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99년부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나고야소송지원회는 바로 이 소송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일본시민의 모임입니다. 소송지원회 회원의 상당수는 교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이제 일본 양심세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번 연수에서 기억에 남는 첫 장면은 바로' 다카하시 마코토'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제 고령의 노인이 되신 선생님의 목소리는 청년과 다름없었습니다. 주마다 300킬로미터가 넘은 도쿄까지 오가며 금요행동을 이끌고 강연과 한국 시민 모임과의 연대에도 여전히 열정적이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스무 명 남짓의 강원도 선생님들의 방문에 선생님은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적인 활동을 들으면서 여러 선생님 눈이 붉어졌습니다.


8월 15일, 내일이면 78주년 광복절입니다.


'아시아의 물개'라 불렸던 수영 선수가 헤엄쳐 건널 만큼 한국과 일본은 무척이나 가까운 나라지만, 풀어야 할 역사 문제는 너무나 큰 장벽으로 남아있습니다.


극단적인 대립이나, 조건 없는 포용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것에 앞서 평화를 사랑하는 두 나라의 아름다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교류가 일상으로 펼쳐지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역사는 교육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진실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역사교육은 미래세대에게 큰 기회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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