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 지기 전에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처음 겪는 폭염이다.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기온은 숨을 턱턱 막는다. 더구나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땅의 숨구멍을 메워버린 도심의 복사열은 살인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텐데, 그 한복판에 수만의 교사가 모여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고 있다.


목백일홍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목숨을 내려놓았다. 지난달 22일 첫 추모 집회에서는 5천여 명의 교사가 모여 서이초 교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외쳤고, 그 이후 사건을 둘러싼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3차 집회에는 4만 명이 넘는 교사들이 참가했다.

여러 언론을 통해 드러난 진실의 한 조각은 ‘악성 민원’이었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녀 귀한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귀하게 낳은 아들 딸, 소중하고 이쁘다. 하지만 평생 품에 끼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들은 유치원을 시작으로 12년간의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학교는 모두를 위한 ‘공동체’지 단순한 ‘서비스업’이 아니기에 애당초 한 아이만을 위한 시-공간은 불가능하다. 학교에 다녔던 부모라면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임에도 일부 학부모는 내 아이 중심으로 학교와 학급이 움직여 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학교도 사람 사는 곳이라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학교와 교사는 일의 앞뒤 사정을 살펴 각종 법령과 규칙에 의지해 수업과 생활교육을 한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내 아이만 바라보는 부모에게는 학교의 모습은 때론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들이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낳으면서 악성 민원과 법적 위협이라는 불필요한 압박이 교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것이 ‘아동학대 처벌법’이다. ‘정서학대’라는 모호한 규정에 더해 ‘신고만으로도 교사를 교실에서 분리시킬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선생님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결국 신고당할까 싶어 학생의 수업 방해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운 현상마저 생기고 말았다.

학교폭력 예방법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사안이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기 쉽지만, 보호자들의 법적 분쟁이 늘어나면서, 학교에서는 교육적 화해나 관계회복에 앞서 민감한 사안에 섣불리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안처리 과정이 마치 재판을 진행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교육공동체의 규범과 도덕은 쪼그라들고 교사의 자괴감은 커져만 갔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적 압박이 수년째 누적되어 왔고, 한 교사의 비극을 계기로 모순이 폭발한 셈이다.

우리 연구원에서 진행했던 ‘교권 보호 방안 수립을 위한 교원·학부모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난다.


강원 지역의 교원 223명, 학부모 289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5.3%가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더니 ▲아동학대처벌법 개정(92.4%), ▲학교폭력예방법 개정(89.5%), ▲학교 민원창구 단일화(95.7%) 등 교원-학부모 구분 없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금 정부와 교육청이 할 일은, 교사·학부모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교실의 근본적인 개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울러, 당사자들의 동의 없는 섣부른 판단과 이념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에 대한 폭넓고 촘촘한 지원이다. 우리나라의 특수교육대상 학생 비율은 교육선진국과 견줘보면 턱없이 낮다. 그 차이만큼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 특별한 지원 없이 일반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담임교사에게 많은 부담과 책임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명심하고 풀어야 할 숙제다.

그나마 희망인 것은 사회적 공분을 바탕으로 ‘수업 방해 학생을 즉시 분리’할 수 있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기대한다.

때마침 50만 교원을 대표하는 6개 단체가 각 단체 설립 후 처음으로 공동요구안을 마련해 제안했다. 아동학대 처벌법을 중심으로 하는 법령 개정, 민원 처리 창구 단일화, 정서·행동 위기 학생들을 위한 과감한 지원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고 시급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 선진국처럼 선생님들이 안전하게 교실에서 아이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학교 구성원의 갈등은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 달 열흘 붉다’는 백일홍이 지기 전에 국회와 정부, 교육 당국은 “오직 교실에서 안전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들의 요구에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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