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축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그 격렬함에 치명적으로 중독되기 쉽다"

영화 '허트 로커'는 뉴욕타임스 특파원 '크리스 해지스'의 말로 시작합니다. 폭발물을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의 삶을 다루는데,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인공은 왜, 지옥 같은 전쟁터로 다시 돌아갔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전쟁같은 상황은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으로 뉴스에 접속하는 순간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빠져듭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피를 철철 흘리는 격투기 경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종합부동산세는 세금폭탄이 되고, 정치인의 말은 폭탄 발언으로 바뀝니다. "타협은 없다. 엄단하겠다"는 권력자의 말에 노동자도, 의사도 '백기투항'을 요구받습니다. 더 격렬하고,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먼저 결론을 정한 듯이 말해버리면 권위의 무게에 짓눌려 다른 의견을 내기보다 그의 의견에 따를 위험이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조건없이 만나자’는 말이 곧이곧대로 믿어지지 않는 게 무슨 까닭일까요. 정책 결정자가 측근들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빠져 정보의 완성도를 외면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기에 십상입니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입니다. 총·칼만 등장하지 않았을 뿐 전쟁터입니다. 언론에서는 ‘한강 대첩’이니 ‘낙동강 전선’이라는 낱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읊어댑니다. 상대 후보를 꺾기 위해 후보를 추천하면서 ‘자객 공천’이라 이름 붙입니다. 정치 후원금은 총알이 되고 국회의원 후보는 어느새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깜깜한 밤 담장을 넘는 자객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말이 난무하다 보니 대명천지에 정말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당 대표의 목을 칼로 찌르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상대의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는 언사가 정말로 사람을 살해하는 일로 번질 수 있겠구나 싶어 아찔합니다.

반면에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받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교원과 공무원입니다. 정당 가입과 정치인 후원은 당연히 안 되고,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어떤 의사 표현도 위법이라 합니다. SNS에 정치인의 글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르지도 못합니다. 전쟁터 같은 상황에 참전하지 않아도 되니까 환영해야 하는 걸까요.

교원과 공무원의 요구는 다양하지만 직무 밖, 근무시간 외에는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출마와 정치활동을 위한 휴직, 후원금, 국민경선 참여에 이어 정당 가입까지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피선거권은 만 18세부터, 정당 가입은 만 16세부터 가능해졌습니다. 청소년들의 정치 문해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겠지요. 반면 교원들의 정치적 자유는 ‘중립’이라는 말에 갇혀 있습니다. 교육기본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민주시민 역량을 길러줘야 할 교사들의 손발이 꽁꽁 묶여있는 상황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사직을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보자 여럿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지켜져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이 보장된다면 전쟁 같은 선거판을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교육적인 축제로 바꿔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오늘, 이른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딸아이가 사다 놓은 라면. 나도 그렇게 꺼리지 않는데 얼마나 매운지 먹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틈새라면'. '틈'. 그렇다면 덜 매운 라면과 더 매운 라면 사이라는 뜻일 텐데요. 매운맛에도 중독됩니다. 중독은 내 감각이 무뎌졌음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더 심각해집니다. 더 맵고, 더 자극적이고, 더 격렬한 상황에 빠져들기 전에 자신의 감각기관에 어떤 편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살펴보는 것이 먼저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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