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다시 깨달은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
(전)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기획조정관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장이 22분 동안 읽어 내려간 판결 요지에서 위 문장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헌법재판소는 이 문구에서, 대통령 파면이 상층 엘리트 정치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저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 낸 결과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한 겨울의 초입부터 국민 주권을 확인한 4월의 봄날까지 거리와 일터에서 마음을 모으고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외친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지난 넉 달 동안 우리 사회는 어두운 민낯을 드러냈다. 역사책 속에 박제되어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계엄이 현실이 되었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주권자를 처단하겠다는 포고령을 선포했다. 그때부터 부정선거론 등 가짜뉴스와 헌법 조항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다. 헌법을 대놓고 무시한 고위 공직자부터 ‘국민 계몽’이라는 수 세기 전 낱말을 남발했던 변호사, 법원 폭동을 선동한 종교인, ‘백골단’이라는 사적 폭력 집단을 버젓이 국회에 데려와 기자회견을 시킨 교수 출신 국회의원까지.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의 틀에서 벗어난 엘리트들의 모습은 우리를 절망하게 했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를 은박 담요로 견디며 광장을 지킨 시민들, 자신의 일상에서 묵묵히 상식의 힘을 믿고 헌재 판결을 기다렸던 국민들은 달랐다. 얼마 전까지 전 세계의 모범으로 칭송받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권력자의 무모함으로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고, 한겨울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 주권자들이 바란 것은 권력도 지위도 아니었을 것이다.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한결같이 소망은 나와 내 이웃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자유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함께 사는 방법을 아는 시민들이 맞잡은 손이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 잘못된 신념의 소수 엘리트들이 망칠뻔한 나라를 주권자들의 연대로 살려낸 것이다.
대통령은 파면되었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민주주의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은 지속가능한 민주공화국을 위해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교육공동체가 ‘민주주의 모범 국가’로서의 자부심을 지켜내고 풍요로운 공동체를 유지·발전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고민과 실천을 시작해야 할 때다.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 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교육의 성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소수의 명문대 입학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고, 도교육청을 비롯해 교육기관이 앞장서서 주요 대학 진학생 숫자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표가 과연 ‘교육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지, 오히려 그 숫자들 속에 이웃을 적대시하고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반지성주의와 반민주성이 자라날 위험은 없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상식과 교양을 갖춘 시민이 결국 우리 헌정을 지켜냈다. 그리고 우리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가야할 방향은 분명하다. 저마다의 속도와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구성원 모두의 잠재력을 최대한 길러내면서도, 개인적 성취 또한 건강한 시민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 강원 교육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또 배운다. 민주공화국에서 법치주의는 어떤 힘을 가졌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지난 넉 달, 어쩌면 우리는 광장이라는 민주주의 교실에 함께 있었다.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서, 학교를 진정한 사회통합과 민주주의의 교실로 세워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