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법 시행 이후,
학교는 더 평화롭고 안전해졌나요?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학교는 더 평화롭고 안전해졌나요?

(전)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강삼영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이 무색한 나날입니다. ‘봄’이라고 어김없이 붉고 노란 꽃이 피어났지만, 때마침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한기가 옷깃을 파고듭니다.

15년이 지났습니다. 2011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은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에 무덤덤했던 교육계를 크게 흔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들끓었던 여론을 잠재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법률 제정”을 선택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학교는 더 평화롭고 안전해졌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학교폭력 사안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왜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지금 학생들은 서로에게 문제 상황이 벌어지면 ‘학폭으로 신고한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자신들에게 생기는 갈등을 교육적 상황 속에서 해결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단면입니다. 학교도 사회입니다. 사회의 본질은 다양성입니다.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법에 정한 절차대로 신고하고 처벌받는 방식에 앞서 자신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안이 충분하게 권고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학생들은 성장합니다. 청소년기의 상처를 성장의 장애물로 남길지, 아니면 디딤돌로 삼을지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신고’와 ‘조사’ 그리고 ‘심의’를 안타깝게 봅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행정심판과 소송’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비교육을 봅니다. 우리 아이들을 유치원 때부터 대화와 용서, 화해와 회복이 아니라 신고와 분노, 미움과 증오를 법률에 기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소한 조치라 하더라도 학폭심의원회에서 결정한 이후, 학생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피해 학생이 뒤바뀐 사안으로 다시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가 높은 비율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학폭법에 기댄 조치들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사안에 휘말려 학폭심의위원회에 출석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른들의 물음에 아무 말도 모르고 ‘꺽꺽’ 울고만 있다면 여러분은 무슨 말을 해주겠습니까. ‘큰일 아니’라고, ‘괜찮을 거’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닫힌 아이의 마음이 열리겠습니까? 여기에 더해 그런 자녀를 바라봐야 하는 부모가 느끼는 교육적 배신감은 또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갑니다.

‘학폭법 폐지’라는 새로운 길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우선, 초등학생(또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법률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에서 시작했으면 합니다. 현재 강화되고 있는 엄벌주의 정책에 기대기보다 폭력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제안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무관용과 단호함을 유지하되 법률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학교생활규정에 따른 교육적 처방으로 갈등을 풀어갔으면 합니다. 교육적 해결이 어려운 사안이라면 일반적인 법절차를 밟으면 될 것입니다.

초등의 경우, 총 학폭 발생 건수의 절반 정도가 ‘학교장 자체해결’로 처리되고, 실제 학폭심의로 진행되는 경우는 40% 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학부모가 ‘학교장 자체해결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심의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경미한 사안’으로 판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학교 내의 사소한 다툼이 심의로 올라오니까 할 수 없이 법률적 조치로 이어진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등은 교육과정이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의 다툼이나 갈등을 학폭법에 기대 해결할수록 학폭법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먼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초등학생 학폭법 제외 여부를 묻는 공론의 장을 펼치면 어떨지 생각합니다. 정해진 결론을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면 논의는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교육 주체들의 이야기가 흘러넘치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게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민주사회에서 왜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이지요. 지금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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