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2018년 태백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교장으로 1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가끔이지만 유치원(5살)부터 전공과(22살)까지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듣는 사람을 염두하고 해야 하는데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며칠을 고민하다 ‘인권과 폭력, 두 가지 이야기를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유치원 아이 말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싫단 말이야, 이제부터 나한테 물어보고 국에 말아줘. 꼭, 그래야 돼.' 아침에 엄마가 바쁘니까 빨리 밥 먹으라고 민정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국에다 밥을 말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국에 밥 말아먹기 싫다고, 다음부터는 나한테 꼭 물어보라고 말하는 거지요. 맞아요. 누구나 다 생각이 있어요. 엄마, 아빠 마음대로, 선생님 마음대로, 형, 오빠 마음대로 하지 말고 ‘이렇게 해도 될까?, 이거 먹을래?, 이 연필 내가 써도 돼? 선생님, 손 잡아도 돼요?’ 이렇게 꼭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오늘부터는 이 노래 생각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꼭 다정하게 물어봐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요. 욕을 하면 안 들으면 되고, 안 놀아주면 혼자 놀면 됩니다. 그런데 나를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살 수 있겠어요. 없지요. 그래서 누가 누구를 때리는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거나 들었다면 우리는 깜짝 놀라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학교생활을 한다면 폭력적인 상황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관례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수사기관의 고문, 군대의 얼차려, 학교의 체벌’ 기성세대들은 성장 과정에서 직접 목격했던 일들이지만 지금은 영화적 상상력 속에서나 엿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폭력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상황을 줄여보겠다는 온갖 정책과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교육구성원 서로가 느끼는 서늘함은 점점 더 날카로워집니다. 그 날카로움에 학생, 교사, 학부모님들이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서이초 교사와 대전 초등학생의 안타까움 죽음은 그러한 아픔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12월 3일 무지막지한 국가폭력을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사문화되었다고 생각했던 비상계엄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되살아난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고 주먹을 휘두른 것과 다를 게 없지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극단세력의 선전과 선동에 이어진 서부지법 폭동은 우리 사회가 힘들게 쌓아온 대화와 타협, 비폭력시위 문화를 한꺼번에 흔들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폭력에 무감각해질지 봐 두렵습니다. 작은 폭력도 무겁게 생각하고 깜짝 놀라야 하는데 폭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특히 교육에서 불신 사회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감시 체계로 들어가는 교육 불가능 상황이 깊어지는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작은 물리적 폭력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폭력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을 지켜가면서도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실수에 대해서는 반드시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실수를 저지르고 즐겁게 그 실수를 넘어서려고 애쓰게 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애정 어린 단호함이 작동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나를 때리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자기보다 약하다고 얕잡아 보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국민을 힘으로 위협하는 권력을 용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폭력에도 깜짝 놀라는 인간의 감성을 우리 아이들 모두가 키워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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