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을 응원하며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3월 4일, 입학식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아이가 품을 떠나 학교에 갑니다.


대한민국은 출생율 0.7을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집 건너 하나 낳는 시절입니다. 설에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까지 하나밖에 없는 손자, 조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2000년 4월 6일. 아이들이 무척 떠든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에 진이가 울었다. 김치와 호박을 못 먹는다고 꺽꺽 울었다."


25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하며 썼던 교단일기를 옮겨봤습니다. 부모 품에 있던 아이가 학교에 들어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같은 식단을 먹는 것은 '처음'일 겁니다. 온갖 감각이 첫 만남인 여덟 살 아이에게 호박과, 쑥갓, 김치는 어떤 느낌일까요. 다 먹지 않더라도 한 조각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엄격함 앞에 아이는 꺽꺽 울고 말았습니다.


그깟 반찬 몇 가지 안(못) 먹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신념을 이유로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사는 게 흉이 아닌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경험은 어떨까요? 뜀틀 앞에만 서면 ‘얼음’이 되는 아이, 친구 관계가 서툴러 늘 혼자인 아이, 수학시간 쉽게 포기하는 아이, 리코더에 자신이 없다고 일부러 리코더를 챙겨 오지 않는 아이까지. 안쓰럽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 곳곳에서 마주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학교 생활의 어느 한 부분을 힘들어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꼭 배워야 하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까닭을 들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간혹 그것을 방관할 때 우리 아이들은 김치 포기자, 뜀틀 포기자, 리코더 포기자, 수학 포기자가 되어갑니다. 저학년 때 하지 않던 일을 고학년이 되어 처음 하려 하면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기거나 평생 결핍으로 남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기 싫다는거 강요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

배우고 가르치는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두라’는 요구는 무서운 말입니다. 어쩌면 교육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뜀틀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이의 신체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김치나 시금치를 먹지 못하는 것은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라, 낯선 음식이 갖고 있는 고유한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두려움과 낯섦을 선생님의 단호함과 친구들의 격려 속에서 도전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가주는 것도, 때로는 싫은 것을 굳이 강요 않는 것도 친절이지만, 아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엄격하게 이끌어 주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다는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김치 다 먹었다요.”

2000년, 여덟살이던 진이는 한 학기가 지나기 전에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아이가 되었고, 지금은 삼척에서 공무원으로 일합니다. 지난 2월 22일 짝을 만나 혼인을 했습니다.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빛나는 아이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가요.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성 있는 교육을 꿈꾸고 계시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친절함과 상냥함 속에 단호함과 엄격함이 다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우리 교육은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리고 아이의 첫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꿋꿋하게 견뎌내실 모든 부모님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모른다


강삼영


아기,

몸으로 겪는

모든 것이

처음


사마귀도

처음


씀바귀

쓴맛도

처음


인류가 찾아낸 모든 ‘처음’


아이는

그 길,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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