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지난해는 입춘 지나고 설이었는데, 올해는 설이 먼저입니다. 동지랑 입춘은 해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해서 일정하지만, 설이 들쑥날쑥한 것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계산했기 때문이겠지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정의롭게 키울 수 있을까요?”
올해 초 함께 했던 토론회에서 학부모 한 분이 걱정스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헌법을 위반한 비상계엄’이라는 하나의 사실에 갖가지 해석을 덧붙여 ‘거짓’을 ‘참’으로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자녀를 바르게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당연하게 드는 마음일 겁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오가는 이야기에는 진실과 정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데, 오늘날 그렇게 되고 있는가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야만적인 경쟁 속에서 교과 점수가 학생의 성품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성적이 높은 아이가 성실하고 착할 거라는 속설을 경험적으로 수긍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쁜 아저씨
오늘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 가니 버스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리면서 쓰레기를 휙 던졌다. 그 아저씨를 지켜보았다. 아저씨 앞에 내리는 할머니가 짐을 무겁게 지고 내린다. 그런데 도와주기는커녕 소리를 버럭 지른다. “같이 내리려면 빨리 내려!” 그러자 버스 운전하는 아저씨가 “왜 소리를 질러요. 당신이 운전해?” 했다. 나는 버스 운전하는 아저씨가 고마웠다. <이은서, 열 살>
교사 시절 만났던 아이가 쓴 글입니다. 은서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만났고 이를 응징하는 또 다른 어른의 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정의로움은 이론이나 지식에서 나온다기보다 ‘은서’처럼 일상에서 경험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정의가 승리하는 과정에 자신이 힘을 보탰다는 느낌이 든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고
도서관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비디오를 봤다. 한 여행자가 황무지를 걷다가 양치기를 만나 물을 얻어먹고 하루를 쉬게 되었다. 그 양치기 할아버지가 도토리 백 개를 매일매일 심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그곳에 가보니 참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별로 안 오던 그곳에도 사람이 집을 짓고 식물과 동물을 길렀다. 한 사람의 힘으로 여러 사람이 행복해졌다. 이런 것을 공익이라고 한다고 도덕 시간에 배웠다. 나도 내가 한 일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진주, 열두 살>
정의를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면 ‘진주’처럼 좋은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는 정의로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뿐 아니라 영혼의 고귀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야기 덕분에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서도 세상을 만나게 되고 정의와 불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은서’와 ‘진주’처럼 실생활이나 이야기 속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경험이 쌓이면 거짓을 만났을 때 화가 나고, 자기 둘레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입니다. 집단에 끼어 있지만 불의에 휩쓸리지 않고, 착한 일에 기뻐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품성은 결국 이런 과정을 겪으며 길러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제안해 봅니다.
동지가 지나고 나면 낮의 길이가 조금씩 늘어납니다. 하늘의 변화가 땅에서도 발현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지나야 하나 봅니다. 하지가 지나고 한 달쯤 지나야 무더위가 찾아오듯이, 입춘이 돼야 꽁꽁 얼었던 땅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입춘을 농사일의 시작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이치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기보다 시대를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소망처럼 우리 아이들을 정의롭게 키우려면 일상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경험을 늘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낼모레면 한 해의 시작이라는 입춘, 첫 마음으로 함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