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은 힘이 세다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올해만큼 새해 인사를 어떻게 건넬지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지나간 해의 아쉬움과 새해의 희망을 말하는 것조차 헛헛하고 소용없는 일 같습니다.


“가슴 아픈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바랍니다. 2025년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기쁜 일엔 함께 웃고, 화나는 일엔 함께 분노하며,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힘겹게 인사말을 건넵니다. ‘건강하셔라’,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조차 사치스럽고 미안합니다. 아무런 잘못 없는 사람들이 깡패한테 뺨 맞고, 모욕당하면 이런 마음이 들까요.


처음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생각은 ‘대통령이 미쳤구나.’였습니다. 계엄이라니요. 꿈인가 싶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물어도 말도 안 된다고 하지 않을까요. 혼자만의 독단적 결단으로 피땀 흘려 이뤄놓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망상에 빠진 것입니다. 야음을 틈탄 독재자의 포고령은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겁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였습니다. 총칼을 앞세워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벼랑 끝에 세웠습니다.


12월 3일 늦은 밤 여의도에 한순간 시민들이 모여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어떤 에너지였을까요. 작가 ‘한강’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총칼을 앞세운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선 시민들은 빛이고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어둠이 더 짙습니다. 비상계엄에 이어지는 내란 사태를 찬양하고 두둔하는 사람들이 혼란과 공포를 만들어 냅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에 따른 질서를 해체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며 선전·선동을 끊이지 않고 내뱉습니다. 지지자들의 마음에 혐오를 심어 내전상태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민주시민의 힘으로 멈춰 세워야 합니다. 주권자로서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가결하던 날 강원도 공립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보낸 문자를 받았습니다. 강원도교육감의 일방적인 예산삭감에 항의하는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무척 고단한 3학년 2학기를 지나왔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신경호 교육감의 대안학교 예산삭감과 망언, 소통 부재로 많은 학생이 분노하고 상처받았습니다. 지난 10월 말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대안학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먼저 나서 학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집회와 언론, 미디어 매체 홍보를 준비하고 있었구요. 그러나 도의원, 교육청 및 어른들의 제제로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참담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긴 시간 끝에 학생 주도 집회 ‘함성’을 추진해 냈습니다. -줄임- 저희는 끝까지 용기 내서 맞서며 목소리를 내보려고 합니다. 다음 집회는 학생, 교사, 학부모, 외부 단체가 함께 추진하는 대안학교 공동체의 문화제입니다. 응원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남은 한 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일 학생들이 준비한 문화제는 도교육청 담장을 넘지 못하고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열렸습니다. 하지만, 오후 4시에 시작해 학생들의 풍물놀이와 노래, 교육활동을 자랑하는 영상상영, 신경호 교육감을 규탄하는 교사, 학생, 졸업생들의 이야기와 행진이 세 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교육정책의 당사자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외침이 교육청 구석구석까지 울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학생들을 섬기라고 위임한 권한을 이용해 오히려 학생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교육감의 언행에서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10년 주민직선 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졌던 민주·시민·인권 교육의 성과가 응원봉 문화로 나타났다는 평가들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잣대는 수능 점수와 대학입시로 교육력을 평가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무자비한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며 서로 연대하는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빈 곳이 생기면 그것을 채우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기성세대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이야기 많이 들었다. 이제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시민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광장을 떠나면 고립되는 시대를 살았지만, 일상의 민주주의를 경험한 세대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육은 교육기본법 제 2조가 밝히고 있는 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에 더 진심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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