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면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면


“조그만 아이가 가위를 들어 자기 목에 대고 ‘죽을 거야’ 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가요. 교실에 이런 아이 한두 명 있으면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선생님들과 만난 자리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이런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담임교사는 수업을 해야 하니까 아이를 교무실에 보낸다는데, 그렇다고 교무실은 그 아이를 맡아 돌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아니지요. 그냥 교감 선생님이나 교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사탕 하나 주고 달랠 뿐이지요. 교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꼭 이런 아이들 이야기 나옵니다. 정도만 다르지 모든 학급이 안고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학업중단 학생들, 교실에 앉아 있지만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 더욱 커지는 교육 3 주체의 갈등, 이것을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린다고 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지요. ‘학교폭력법’처럼 법령 하나 만든다고 뚝딱 해결될 일도 아닐 겁니다. 분명히 풀어낼 방법이 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하는 1970년대 이오덕 선생님의 외침을 다시 소환해 우리를 다시 비춰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달 ○○초등학교에서 보결강사로 9일 동안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연가를 내서 자리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강사 마지막 날, 지난번 산책길에 아이들에게 감을 따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아침 출근길 최신식 감 장대를 차에 실었습니다. 교실에 올라가니 먼저 학교에 온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 엎드려 놀고 있네요.

“너 어제 도서실에서 다쳤다며?”

현식이는 오른쪽 귀밑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반창고가 귓불을 덮고 있습니다.

“안 아팠어? 아파서 울었지?”

“당연히 울었어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곧 학교 버스가 들어오고 다들 모였습니다.

“얘들아, 산책하러 가자. 지난번 따지 못했던 감 따야지.”

신발을 갈아 신고 운동장과 주차장을 지나 뒷산 아래 모였습니다. 남자애들은 다 있는데 여자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자애들은 왜 안 보여?”

“조금 있으면 손잡고 올 거예요.”

2년째 같이 사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자기들만의 관성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여자애들이 보입니다. 손을 잡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넷이 딱 붙어서 함께 걸어옵니다.

산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또 일이 벌어집니다. ‘나 안가’ 하며, 민우가 교실로 뛰어갑니다.

“현식이가 쿵후판다라고 했어요.”

여덟 명의 아이는 산책하러 가는데, 민우는 ‘길 잃은 양’ 신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산책하지 말고 교실로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우리끼리라도 산책하러 가야 할까?”

“가서 사과하고 데리고 와”

지우가 똑 부러지게 말합니다. 그러자 현식이는 내 얼굴을 봅니다.

“그래, 가서 데리고 와라. 우리 기다리고 있을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실로 뛰어갔던 현식이가 혼자 돌아옵니다.

“혼자 있고 싶데요.”

‘혼자 있고 싶다’ 2학년이 할 소리는 아닌데 말입니다. 생각이 깊어졌어요. ‘산책하러 갔는데 혼자 있는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렇다고 약속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더욱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겠지.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맞닥뜨리면서 교사가 같은 시간에 다른 곳에 있을 수 없다는 물리적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또다시 느낍니다. 정말 아이들은 하나하나 다릅니다. 받아 내림이 있는 뺄셈을 어려워하거나 글자나 숫자를 아주 엉뚱하게 쓰는 아이가 있다면 옆에 앉혀 차분하게 일러주면 좋겠는데,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 아이에게 집중할 틈을 다른 아이들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때로 더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 비율은 전체 학생의 약 2% 수준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특수교육 대상자 비율(미국 15%, 스웨덴 13%, 영국 12%, 일본 6.5% 등)에 견줘 너무 낮습니다. 다양한 학생들에 대한 맞춤교육, 포용교육, 개별지원교육을 가장 안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학교를 돌아보면 특별한 교육적 처방이 필요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급마다 특별한 돌봄과 배움이 필요한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담임교사 혼자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 머물 수 없습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다수의 아이 곁에 있는 것도, 그 반대의 상황도 최선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교실에는 스무 명이 넘은 아이들이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합니다.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부모나 교사를 탓하지 않고, 교육의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면, 우리의 교육적 역량을 선생님이 아이들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써야 합니다. 특수교육 대상의 범위를 전체 학생의 10% 이상 늘리고 많은 예산과 자원을 과감하게 지원해야 합니다. 지역교육청마다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 맞춤형 지원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강조했던 그 누구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개별 맞춤형 교육의 길이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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