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다시, 글을 쓰게 하자. 글을 쓰자!
2020년 가을, 작가 ‘한강’이 쓴 ‘흰’을 읽었습니다. ‘시’ 같은 ‘줄글’을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아!’, ‘참, 좋다!’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딸아이가 사다 놓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뒤, 또 어떤 글을 썼나 찾다가 책 제목이 ‘흰’이라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길까 궁금했습니다.
“언니,라고 부르는 발음은 아랫니를 닮았다.<‘흰, 131쪽>”
‘아, 이건 무슨 말이지.’ 누구를 언니라고 불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로서는 몇 번이고 ‘언니’를 되뇔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아, 언니라고 말하니까 혀끝이 아랫니를 지긋하게 기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언니, 언니’ 하니까 아랫니가 하얗게 드러나는 겁니다. ‘아, 정말!’
그렇게 만난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쓴다는 것, 말이나 몸짓, 그림이나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읽기와 쓰기는 세상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만약 모든 표현 수단을 빼앗기고 표현하는 길이 꽉 막혀 버린 사람이 생명을 이어 갈 수 있을까요. 답답한 마음에 거리로 나서 구호를 외치거나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까닭도 자신들의 마음을 직접 전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실체적 진실이 묻히는 것을 경험한 시민들이 오늘도 직접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살아있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표현’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읽기와 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도구입니다. 생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숨쉬기라면 읽기는 들숨이고 쓰기는 날숨과 같은 것이지요.
다시 생각이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표현할 기회를 얼마나 주고 있을까요. ‘말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만드는’ 시간을 충분하게 주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교육활동에서 이루어지던 많은 일들이 ‘시험 점수와 상관없다’, ‘위험하다’, ‘쓸데없다’고 관심 밖으로 밀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특히, 초등학교 1학년 그림일기부터 시작해서 꼭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던 ‘글쓰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일기 검사가 문제’라는 판단이 아주 중요한 교육활동이었던 ‘일기 쓰기’를 위축시켰습니다.
“자기표현은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교육입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자기표현이 될까요? 말하기, 글쓰기, 그리기, 만들기, 노래하기……. 이런 여러 가지 갈래에서 아이들이 신명 나는 표현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몸과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이오덕-”
한평생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다시 우리 아이들이 ‘편지를’, ‘일기를’, ‘글을’ 쓰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글을 쓰게 할 수 있을까요. 다행스럽게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작가 한강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일기를 썼겠지요. 담임 선생님이 일기 끝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 주었을까요. 아니면 짤막한 답글을 달아줬을까요. 아무튼,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책 읽자’, ‘글 쓰자’ 말할 기회를 줬지요. 고마운 일입니다.
그나저나 작가 한강의 ‘언니’는 참으로 부지런하고 다정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과 닮은 것 같아서 따뜻해집니다.
“언니. 언니가 있었다면,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꼭 한 뼘 키가 큰 언니.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엄마가 아플 때면 코드를 걸치고 약국에 다녀오는 언니. 쉿, 조용조용히 걸어야지, 자신의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대며 나무라는 언니.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쉽게 생각해 봐. 내 수학문제집 여백에 방정식을 적어가는 언니. 얼른 암산을 하려고 찌푸려진 이마.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는 언니. 스탠드를 가져와 내 발 언저리를 밝히고, 가스레인지 불꽃에 그슬려 소독한 바늘로 조심조심 가시를 빼내는 언니. <‘흰’, 122쪽>”
다시, 글을 쓰게 합시다. 글을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