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이국종 교수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

(전)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말 뒤에 숨어 있는 삶

아이들 손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자주 생깁니다. 대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꼬박꼬박 찾아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에 잘 나오지 않는 피를 짜내고는, 울먹이던 아이였습니다. 관심을 받기 위해 엄살을 부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아이에게는 그 작은 상처가 정말 아프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아이고, 많이 아프겠네’ 걱정하며 관심을 보여주고 나면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조금씩 조금씩 아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유·초·중·고등학교를 막론하고 이미 많은 선생님이 겪고 있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말 뒤에는 삶이 숨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속한 사회도 녹아 있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마주할 때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은 ‘알아채 주는 것’입니다. 말속에 담겨 있는 삶을 들여다보고 따뜻하게 보듬어야 합니다.

“조선 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들이 해 먹는 나라”

얼마 전, 중증 외상 분야의 권위자인 이국종 교수님이 군의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조선 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들이 해 먹는 나라”, “평생 괴롭힘 당하며 살기 싫으면 바이탈과, 즉 필수 진료 과목을 하지 마라”와 같은 날 선 말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거친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의 말에도 삶이 녹아 있지 않을까요. 누구를 불편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말 자체의 옳고 그름만 판단하지 말고 말 뒤에 숨어 있는 삶과 사회를 드러내는 것,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입만 터는 문과”들이 권력을 잡아 왔다는 인식은 사실 꽤 오래되었습니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위즈덤하우스, 2023)이라는 책에 1950년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 한 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글을 쓴 이는 당시 문교부 차관이었던 물리학 박사 최규남 선생. 인용하자면, “(과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인문 계통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정치, 경제, 법률 기타 모든 방면에 지도자 격으로 군림하여 이공학부 출신의 기술자를 부리는 지도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문과 출신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겼고 있습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공직자 자리에도 이과 출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국종 교수가 속한 의료 관련 고위공직자에 이과 출신이 많다는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75년 전 최규남 선생의 문제의식이 2025년 이국종 교수님에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과, 이과라는 낱말을 덜어내면 진짜 하고 싶었던 생각이 보입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입만 터는 문과”에 비유한 사람들은 현장을 무시한 정책 결정권자가 아닐까요. “평생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왔다고 느낄 정도로 이국종 교수님이 느낀 좌절감은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저에게는 이국종 교수의 말이 제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해 달라는 절규로 들립니다.

어떤 상처는 아무는데 1년이 걸립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문·이과 구분이 공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입만 터는 문과들”이라는 표현은 자취를 감추겠지요. 그러나 교육 현장과 교육정책 결정권자 사이의 간극이 좁혀진 것은 아닙니다. AI교과서 도입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당장 도입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였지만 결국 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해 현재 전국 일평균 접속률은 6.4%,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의 일 평균 접속률은 4.6%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고교 학점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면 시행 이후 교사 인력 부족으로 1명의 교사가 4개의 이상의 과목을 맡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규모 학교나 도서벽지 학교에서는 과목을 개설하는 것조차 버거워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도시지역과의 교육 격차는 더 커질 것입니다. AI교과서와 고교 학점제 모두 현장 전문가들이 부작용을 우려해 신중히 도입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졸속 정책에 교사, 학생, 학부모들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느꼈던 답답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정책은 교육 현장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현장의 요구를 듣고 이해하여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정책 결정권자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현장의 요구가 정책으로 구현되는 상향식 정책 제안이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입만 터는 문과”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파면 이후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외골수가 정책 결정권자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가야 할 길이 멀게 보이지만 신발 끈을 고쳐 맵니다. 교육은 10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아무는 데 1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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