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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관의 부동산 May 27. 2022

부자엄마 가난한아빠(10)

부자엄마의 부동산

엄마는 가난한 집안의 7째 막내로 횡성에서 태어났고 지독히도 가난했다. 1970년대에 시골이란 지주가 아닌 이상 누구나 가난했다. 살면서 아빠에게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공부를 꽤 잘해서 고등학교는 원주로 유학을 갔다.

인문계를 지원한 줄 알았는데 입학하고 상고에 간 것을 알았다. 상고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고, 계속 공부가 하고 싶어 야간 전문대를 다니며 학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거기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결혼하고 서울에 살자 해서 그동안 모은 돈을 부모님께 드리고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의 집안도 가난해서 그동안 모은 것을 자기 어머니께 드리고 서로 전세를 얻을 돈이 없었다.


1) 1995년 19,000,000원 전세로 시작하다.

결혼을 하고 축의금 남은 거 4백만 원과 대출 신용대출 1천5백만 원을 받고 1천9백으로 서울 변두리 개봉동에 전세를 얻었다. 대기업에 6년을 넘게 다녔더니 신용대출이 가능했다. 방하나 부엌 겸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이다. 지금 말하면 1.5룸인 것이다. 맞벌이를 시작하여 2년 만에 대출을 다 갚았다. 신랑은 월급 900,000이고 엄마는 600,000원을 받았다.


2) 1997년 25,000,000원 2룸으로 이사 가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집이 너무 좁아 이사를 가야 한다. 광명시에 대로변 상가 2층이 저렴하게 나왔고 집은 넓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힘든 조건이다. 버스정류장 바로 옆이라 소음과 먼지로 여름에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아이를 재우느냐 여름밤에는 자동차에 에어컨을 켜고 돌아다녀야 했다. 집주인에게 1년 만에 전세를 빼 달라 했더니 집주인은 알았다고 한다. 이사 날자가 다가오니 집주인은 돈이 없어 집을 못 빼준다 한다. 산본에 전세를 얻었는데 큰일 났다. 잠이 안 온다. 누구에게 돈 빌릴 곳도 없고 이사를 가면 전세금을 반환받을 권리가 사라진다.


3) 1998년 산본으로 이사하다.

다행히 광명시 집주인 아들이 들어온다고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그동안 걱정한 거 생각하면 10년은 늙은 거 같다. 언니가 살고 있는 군포시 산본 지하 방 2개짜리 25,000,000원 전세로 이사했다. 아이가 있어 언니가 같이 봐주니 좋았다.


4) 2000년 50,000,000원 아파트 전세로 이사하다.

남편이 벌어온 돈을 모아 드디어 개봉동 입주 아파트로 이사했다. 빚도 없고 둘째도 태어났다. 방이 3개고 화장실이 2개다. 입주 아파트라 전세가 조금 싸다.


5) 2002년 전세를 40,000,000원 올린다.

2년이 지나고 전세를 세로 계약하는데 집주인이 전세를 9천만 원으로 4천만 원 올려 달라고 한다. 미친 전셋값이다. 1년에 2천만 원씩 2년을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남편 연봉이 2천5백쯤 했으니 한 달에 50만 원으로 애 둘을 데리고 살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어쩔 수 없이 같은 단지에 저렴한 전세로 옮기기로 했다. 그 집은 낮은 층수에 전세가 8천이다. 화가 난다. 어떻게 2년 만에 전셋값이 80%가 올라가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외벌이인 남편의 봉급이 올라 씀씀이를 줄이면 전세금을 감당할 수 있었다.


6) 2003년 아파트를 계약하고 몸테크를 하다.

전세를 그리 심하게 올려 주고 나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2년 후에 전셋값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때 더 올려 달라고 하면 아파트에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남편은 바보다. 돈만 벌어 오면 다인 줄 알고 그런 고민을 안 한다. 이사온지 1년 만에 부천에 25평 분양가 1억 인 아파트를 피 4천을 주고 계약했다. 계약금과 피를 주려면 전세를 빼야 한다. 다행히 전세는 세입자가 빨리 들어와 전셋값을 돌려받았다. 방하나 부엌 겸 거실이 있는 2천5백짜리 전세로 1년만 계약하고 고척동으로 이사하고 계약금, 피, 중도금을 지급했다. 지금 말하는 몸테크이다. 아파트에 살다 다가구로 옮기니 사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남편은 그냥 편하게 살지 모하러 이 고생을 하냐고 타박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차장이 없어 저녁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7) 2004년 부천에 내 아파트가 생겼다.

역곡에서 버스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야 하지만 드디어 결혼하고 서울에 온 지 9년 만에 내 아파트를 가졌다. 바보 남편은 자기만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행히 입주가 시작하고 집값은 2억 정도 하니 선택을 잘한 거 같다.


8) 2006년 집을 팔고 재개발 딱지를 사다.

집값이 올라 2억 4천에 집을 팔았다. 바보 남편은 그냥 살지 모하러 또 집을 옮기냐 한다. 무시했다. 6천만 원 주고 근처 재개발이 가능한 13평짜리 판자촌을 사고 33평 전세로 옮겼다. 집은 넓어서 좋지만 내 집이 아니다. 재개발이 빨리 되기를 바라야 한다.


9) 2010년 전셋값이 3억이 되다.

재개발 소식은 없고 집주인이 좋아 4년을 전셋값을 올려주지 않고 편하게 살았다. 집값은 3억 5천 정도여서 샀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반대한다. 재개발지역에 1 주택을 가졌으니 집을 또 사면 안된다는 것이다. 진짜 바보다. 1가구 1 주택 신봉자다. 집으로 투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재개발 딱지를 사고 내가 살집을 사는 것도 투기인가? 집주인이 집을 팔기로 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4년 만에 전셋값이 8천이 올랐다.


10) 2012년 반전세로 월세를 줘야 한다.

재개발 조합장이 돌아가셨다. 재개발 조합 설립 후 10년이 지나도 재자리다. 빨리 돼야 하는데 진행이 안된다. 집주인이 월세로 20만 원을 올려 달라고 하며 안되면 이사 가라고 한다. 이사비용과 복비를 계산하면 월세 20만 원을 올려주고 있는 게 더 낮겠다 싶어 결국은 월세를 올려 줬다. 20만 원씩 1년이면 240만 원이고 4% 금리를 생각하면 6천만 원의 전세가 상승인 것이다. 또 미친 전세다.


11) 2014년 월세를 더 올려 줬다.

재개발 소식은 없고 2년이 지나고 집주인이 또 월세를 20만 원 올려 달라고 한다. 화가 난다. 그래도 이사를 가는 것보다 올려주는 것이 나을 거 같아 올려주고 2년을 더 살기로 한다. 전세 시세는 3억 6천 정도이나 이사 가는 비용이 싫어 올려주고 살았다.


12) 2017년 집 수선비를 내고 나가란다.

정말 나쁜 여자다. 내가 이 집에 7년을 살면서 시세보다 높게 월세를 주었음에도 자기가 들어올 건데 마루가 낡아서 수선비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2백을 받아야 한단다. 기가 막히다. 자연 노후된 집수리 비용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사 후 확인해보니 인테리어를 바꾸고 있다.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안 줘도 된다고 하지만 우기는데 싸우기 싫어 주고 나왔다. 화가 난다. 전세 3억 6천에 집을 옮겼다. 재개발은 안되고 전세금 올려 주는 것도 신물이 난다. 집을 샀으면 좋았었는데 바보 남편 때문에 고생이다.


13) 2017년 청약 아파트를 줍줍 하다.

이사 후 고민이 많아졌다. 재개발은 안되고 언제 또 전셋값을 올려 줄지 모른다. 남편도 회사를 옮기도 수입이 전 같지 않다. 옆 동네 항동이 개발되어 아파트 분양을 한다. 1 주택이 있으니 청약은 힘들고 미계약분을 청약해야 한다. 하루를 꼬박 세고 줄을 서서 순번 6번을 받았다. 바보 남편은 하지 말라고 또 말리는데 나는 기어코 해야 한다. 성공했다. 2019년 입주다.  


14) 2019년 입주와 재개발 입주권.

재개발이 드디어 관리처분 계획이 나오면서 철거가 시작되고 입주권으로 바뀌었다. 6 천주고 산 집은 14년 만에 9천만 원이란 평가를 받았고 5천만 원의 무이자 이주비가 나왔다. 청약 줍줍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아파트에 잔금만 치르면 입주가 가능하다.

큰일 났다. 정부가 부동산 가계 대출이 있으면 DTI를 30%로 묶었다. 잔금 치를 돈이 모자란다. 살면서 한 번도 누구에게 돈을 빌린 적이 없었는데 정부 방침이 바뀌면서 대출이 안 나온다. 눈물이 난다. 전세를 그렇게 올려주고 옮기면서 내 집에 들어 가려하니 대출을 규제한다. 남편은 집이 1채 있어서 그런다고 정부를 옹호한다. 이념이 뇌를 지배한 진짜 바보다. 은행에서 분양가가 아닌 감정가의 30%를 해준다고 한다. 살았다. 돈이 거의 딱 맞게 떨어졌다.


 왜 진보정권은 서민들을 죽이는 정책을 번갈아서 내놓을까? 작은집이라도 1 주택자라면 또 집을 못 사게 하는 게 맞는 정책일까? 어디까지 서민들이고 누구를 위한 정책 들일까?


15) 대체주택

관리 처분 후 주택의 분양권을 받아 재개발 입주 때까지 1 주택이다. 재개발 입주 후 1년 안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면 양도세가 없다. 다행이다. 대체주택이란 것을 알고 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좋은 결정을 한 것이다. 아파트 값이 연일 미친 듯이 오른다. 입주권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올라 그동안 서울 근처에서 버틴 보람이 있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노동소득만 가지고 서울에 집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결혼하고 26년을 살면서 13번의 이사를 다녔다. 아마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집에서는 1년만 살고 어떤 집에서는 6년을 산적도 있다. 정확히 평균 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겼다. 옮길 때마다 미친 전셋값은 우리 같은 서민들의 집을 줄이거나 외곽으로 몰아세운다.  


문재인정부의 임대차 3 법은 조금이나마 전세 세입자들이 2년이 아닌 4년의 주거 기간을 확보해 줬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치솟는 전셋값과 집값은 노동소득만 가지고는 따라잡기가 불가능하다.


엄마는 흔히 말하는 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고생하면서 좋은 선택으로 인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재개발 딱지를 사지 않았다면?

집을 선택하면서 몸테크를 하지 않았다면?

청약시장에서 밤 세며 줍줍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서울에 살지 않았다면?


내년에는 재개발 주택으로 이사를 할 것이고 아이들이 미래에 살 수 있는 집을 보러 다닐 것이다. 엄마는 주택 청약의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저축해서 집을 사는 것이 시간이 지난 후에 집값은 청약을 기대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울에 전세 끼고 갭 투자로 2,3억이면 재개발 가능한 빌라나 아파트를 아이들 이름으로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커서 세대분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50대의 엄마들은 다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내가 살집은 있지만 아이들이 살 집을 마련하느 것이다.


 진보정권의 1가구 1 주택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같은 엄마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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