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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클로이 Feb 07. 2023

프랑스 살이의 흑과 백 - 1

내가 겪은 흑과 백.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다만 장단점이 다를 뿐


I. 흑


바야흐로 약 10년 전, 2013년도의 일이다.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로 인천 공항을 떠나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워낙 기대를 하지 않고 온 프랑스행이었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와 막상 새로운 환경에 떨어지게 되니 내심 두려움 및 호기심이 솟아오르긴 했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도착 시엔 어느 구역으로 가서 rer을 타시면 됩니다."라는 등의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았을뿐더러 프랑스인들은 지금처럼 다들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다. 물어봐도 다들 저쪽! 이라고만 대답했을 뿐. 그래서 rer을 타러 가는 길이 내게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엄청 헤매던 와중에 스쳐 지나가던 한 남자가 스쳐 가듯이 한 말, 그리고 내 귀에 들어온 한 문장 "Chinois! I love chino!" (chino는 심지어 프랑스어(chinois)도 아니고 스페인어로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처음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지?라고 말이다. 그때는 방금 도착한지라 이게 인종차별의 한 부류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몰라서 다행이라고 할까? 이게 왜 인종차별이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약간의 예를 들겠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중국계 프랑스인이다. 그녀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직업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중국계이긴 하지만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며, 프랑스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chinois: 중국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고객들은 가끔 그녀를 굉장히 무례하게 대한다. 그런 그녀는 얼마 전에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고객 중 한 명이 다짜고짜 "그래서, 너 아기는 중국으로 보냈고?"라는 식의 무례한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의 고등 교육까지 받은 프랑스인이다. 단지 그녀의 외모만 아시아인일 뿐. 물론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무지해서 하는 말이 맞기도 하지만. 그러나 단지 외모 하나 때문에 "넌 외모가 아시아인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중국에서 온 사람이겠지."라고 다짜고짜 분류해버리려고 하는 뿌리 깊게 박힌 그들의 얕은 인식이 어이없을 뿐이다. 



Ⅱ. 백


    항상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오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자기만의 얕은 잣대로 다른 이들을 재고 편견에 갇혀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겪은 또 다른 면의 프랑스는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다. 내가 막 위의 일을 겪고 rer(프랑스의 급행 철도. 파리의 외곽과 중심부를 이어 주는 노선)을 타러 갈 때의 일이다. 3개월을 프랑스에서 버틸 생각을 하고 짐을 넣다 보니 짐이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캐리어의 제일 큰 사이즈에 짐을 꽉꽉 눌러 담아기 때문에 정말 무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참 미련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rer을 타러 내려갈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냐면 에스컬레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리의 중앙부인 Chatelet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는데,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고 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수도 상당히 많았고 캐리어가  너무 무거워서 무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떡하지 라며 안절부절못하던 순간 뒤에서 들리던 "도와줄까요?"라던 천사 같은 목소리와 함께 어떤 한 프랑스인 아저씨께서 선뜻 계단 위까지 캐리어를 올려 주셨다. 고맙다고 연신 말하는 나에게 천만에요 라는 한마디 말만 남긴 뒤 홀연히 떠나셨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며칠밤을 묵던 숙소에서 나와 기차를 타고 교환학생 수업이 시작되는 Chambery로 가야만 했기에 파리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짐을 들고 또 한 번 이동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기차역으로 가는 순간이 또 정말 고되었다. 지금이야 몇몇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아직 모든 역에 다 있지는 않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전에 미리 가보시거나, 잘 알아보시기를 추천함) 그때 당시 내가 가야만 했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 말인 즉 큰 캐리어를 직접 들고 계단을 내려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또 당황해서 짐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을 때 어떤 한 분께서 "도와줄까?"라고 하시기에 내가 "너무 무거운데 괜찮을까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한번 쓰윽 들어보더니 "무겁네 허허 그런데 괜찮아" 하고 계단 밑까지 짐을 같이 옮겨 주셨다. 역시 너무 고맙다고 말씀드리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으시며 자리를 떠나셨다. 



Ⅲ. 흑과 백 그 중간 어디 즈음


    난 아직까지 프랑스에 거주 중이다. 10년 차가 되었는데, 감회가 참 새롭다. 사실 내가 여기서 지내온 시간들은 단순 거주라기보다, 버텨 왔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지금까지 버텨 오면서, 여러 가지 흑과 같은 일들을 많이 겪어 보기도 하였다. 물론 어딘가에선 계속 현재 진행 중인 일이고 불과 몇 달 전에 겪은 일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느낀 점은 늘 백과 같은 일도 같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흑과 같은 일로 상처를 받아 너무 마음 아파하고 슬퍼할 때면, 마치 백의 천사처럼 그들이 내민 따스한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선 "그래,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좋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구나.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다독이곤 했다. 그리고선 나도 흑과 같은 일을 누군가에게 행하고 상처 주지 않도록 더 되돌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하였고 백과 같은 일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어졌다. 그렇기에 흑과 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까지 프랑스에서 이곳의 문화를 더 알아가고 관찰하는 중이라서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이곳은 미지근함이 없는 곳인 것 같다.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래서인지 이곳은 내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으로 인해 이곳에 대한 애증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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