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살이의 흑과 백 - 3

날 강하게 만들어 준 모든 상황에 감사.

by Dear 클로이

현재 프랑스 날씨는 딱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얼마 전에 39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가 현재는 23-24도로 걷기에 딱 쾌적한 온도다. 6월이 너무 더웠던 건지 사실 아직은 이 날씨에 적응이 안 된다. 원래 여름은 좀 더워야 정상 아닌가 싶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일,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적당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미소 짓는 사람들. 모두들 힘들었던 그 시기를 잊은 듯해 보인다. 그 시기는 바로 코로나가 퍼져나가던 시기이다. 솔직히 말하면 코로나로 인한 봉쇄 해제 직후부터 약 2년 간은 사람들 사이에 이전에 느껴본 적 없던 텐션이 느껴졌었다. 이 시기에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내가 알던 프랑스는 이제 없다는 말이었다.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도 우린 많은 타격을 받은 듯했다.


파리의 한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모르는 옆 사람과도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누가 되었건 서로 소소한 얘기를 나눈 후 조심히 들어가세요, 좋은 저녁 되세요 하고 헤어지던 시기가 있었다. 또 내가 어딜 바쁘게 뛰어다니면 프랑스에선 그렇게 바쁘게 뛰지 않아도 괜찮다며 웃으며 말해주던 아저씨들. 사실 요새는 이런 작은 재미를 찾기엔 힘든 것 같다. 이렇게 변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워낙 흉흉한 일도 많이 일어나면서 아무래도 스스로를 개방하는 데에 조금 더 신중을 가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대로지만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나 스스로가 변한걸 수도 있겠다. 관계에 있어서 조금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아니면 아예 거리를 둬버리는 것이거나. 원래 내가 이런 성격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실 이 얘기를 또다시 꺼내기에는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을 한 번 더 떠올려야 하기에 쉽지는 않았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나는 원래부터 내향적인 성향이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 왜?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코로나 시기에 겪었던 인종차별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코로나의 원인 및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의 화살이 모든 동양인에게 돌아갔었다. 이 시기에 난 그들의 심연까지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그로 인해 큰 혼란도 왔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지금까지 나한테 가식적으로 대한 것일까? 아니면 환경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마스크를 끼고 들어가면 유독 우리에게 따가운 눈총을 주던 한 아저씨, 앞에 백인 여자에게는 친절하게 잘해주면서 정작 내 차례가 되니 인사도 안 받아주고, 포인트 카드를 안 들고 왔던 백인 여자에게는 괜찮다면서, 핸드폰 번호만 주면 가능하다던 점원이 내가 같은 걸 요구하니 난 그런 거 할 줄 모른다고 하던 사람.

코로나 시기에는 지하철 1호선 라인에 살 때여서 1호선을 타고 한인 마트에 종종 가곤 했는데, 1호선은 다른 지하철과는 다르게 양 옆이 개방되어서 지하철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무튼 내가 지하철에 타면 나를 피해서 다 내려버리거나 아니면 자리를 옮겨 버리던 일이 자주 있었다. 혹은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거나. 사실 이 얘기를 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네가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냐 등의 해괴망측한 소리를 해대지만, 나만 겪은 일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어떤 아이가 다가와서 "코비드"라고 속삭이고 갔다고 집에 와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는 아이, 지하철 타러 갔더니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싸대던 여자. 나만 보면 대놓고 콜록콜록하면서 지나가던 사람들. 또 더 심각했던 것은 뉴스에서 한 번 보도된 적이 있는데, 길 가던 동양인을 보면 때리라는 식의 메시지가 어떤 그룹 내에서 돌았던 모양이다. 그때 다들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하필 이 날 출근날이어서 좀 무섭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게 과연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감히 행해질 수 있는 일인가? 근데 보통 누군가를 인종차별하는 사람들을 프랑스 사람들 또한 굉장히 불쾌하게 여긴다. 나한테 코로나 기간 때 인종차별하던 약국 직원이 있었는데, 다른 약국 직원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하면서 싸워줬다. 그 일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그 약국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여러 종류의 일을 겪고 난 후에 난 이런 일에 무너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며, 그런 일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문득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펼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싫었다. 멘탈이 완전히 조각조각 부서졌던 걸 애써 모른 체해왔던 것이다. 사실 이 조각을 하나하나씩 주워서 어루만지며 붙여가는 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다. 어쩌면 아직도 붙여가는 중일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애써 덮으려고 외면해 보았다. 물론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회복은 도움은 되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해 보였다.

지금 보면 좀 이기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깨진 조각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큰 도움이 아니라, 짐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고 같이 들어주기, 교통카드를 찍었지만 개찰구 문이 고장 나서 못 나가는 사람이랑 같이 나가기, 항상 1유로나 2유로 동전 들고 다니면서 가끔 지하철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에게 주기 등등.

그 당시에는 내가 살고 싶어서 남을 도운 것이기에 딱히 바라는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내가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로 지나가지 못해 이도저도 못하는 일이 있었다. 개찰구 문이 고장이 났었던 것이다. 하필 굉장히 바쁜 시간대여서 나한테 관심도 없고, 다들 앞만 보기 바빴다. 왜냐면 다들 늦지 않게 빨리 회사에 가야 하고, 학교에 가야 하니깐. '아 아무래도 누가 도와주긴 힘들겠지..? 어떻게 여길 지나가지..'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희한하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를 보더니 "나랑 같이 지나가자. 내가 도와줄게." 순간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번개 맞은 느낌이었다. 그분에게 너무 고맙다고 얘기하니 웃으면서 그냥 쿨하게 본인 갈 길로 바삐 가셨다. 사실 그 후로도 여러 번이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로 한참 힘든 나날을 보낼 때 같이 나누면서 보듬어 주던 친구들, 그리고 우리 시부모님. 사실 시어머니랑 난 성격이 잘 맞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로 여행도 많이 다니신 분이고, 굉장히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오히려 서로 다른 모양이기에 각자의 어긋난 틈으로 맞아 들어가는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때 하신 말씀이 "그렇게 차별하는 사람들은 보면 보통 프랑스 영토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그냥 프랑스 내에서만 보고 듣고 지내는 닫혀있는 사람들이야."라고 하셨다. 나는 이 말에 백 프로 동의한다. 자기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들, 분명 자기 스스로의 인생 또한 하대하면서 늙어갈 그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살짝 들긴 한다. 이제는 반면교사 삼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를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지 저런 방식으로는 인생을 살지 않을 거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데 남에게 막대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돌고 돌아 모든 게 다 하나라는 말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믿는다. 나 또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한,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을 지금에서야 뒤돌아보면 참 고맙다. 덕분에 웬만한 소리엔 끄떡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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