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은 양면이다. 완벽한 단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덧 프랑스에 지낸 지 13년 차가 되었다. 하루하루 지내면서 드는 의문점은 과연 내가 이 나라에 완벽히 정착했느냐라는 것이다. 사실 과장 더 보태서 말하자면 조금 더 지나게 되면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절 및 절반을 프랑스에서 보내게 된 것인데, 마음속에는 내 나라인 한국과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 사이에서 한 다리씩 걸쳐놓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든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그런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프랑스에 정착이라는 말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다고 느껴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불평불만할 줄 아는 걸 보면 나름 프랑스에 잘 적응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내 인생을 뒤흔들어놓는 중인 한 존재가 생겼다. 바로 강아지인데, 얼마 전에 한국에서 프랑스로 데려왔다. 데려오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지만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포근함을 느끼는 중이다.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짐은 뒷전이고 강아지를 찾으러 갔더니, 때마침 익숙한 케이지가 컨테이너 벨트를 통해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일단 상태체크부터 하고 물을 좀 주었다. 그다음 세관으로 가서 케이지 모서리 네 군데에 묶여있는 케이블 타이를 제거해 달라 해야 하는데, 보통 이때 강아지의 Annex IV ( EU 부속서류) 서류를 보여주면 된다. 막상 세관에 가서 서류에 관해 물어보니 프랑스에 있을 거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하니 그럼 서류 체크할 필요가 없단다. 그냥 가라고 하더라.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또 혹여 나중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예를 들면 불법으로 수입 등등) 우선은 밀어붙였다. 그랬더니 일단 서류는 한 번 훑어 보겠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줬더니 왜 영어로 돼있냐는 것이다. 왜 내가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얘네 대신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서 언성을 좀 높였다. " 난 EU 공식 사이트에서 뽑은 거라서 거기까진 모른다."라고 하니 이건 벨기에 용이라는 둥 이상한 말을 해대길래 "난 하라는 대로 했고, EU 공식 사이트라 영문이다."라고 했더니 혼자 궁시렁하더니 서류의 맨 마지막 장의 세관란에 사인 및 도장을 받아왔다. 해줄 거면 그냥 한 번에 해주면 되지 꼭 트집을 잡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라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이렇게 매뉴얼 없이 일을 처리하는 덕에 나도 덕 본 것이 있으니 그냥 고맙다고 하고 넘어갔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출국 시 샤를드골 공항에서 생긴 일이다. 분명 출국 세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공항에 사람들이 너무나 붐비는 것이다. 바캉스철인 7월이기도 했고, 낮 비행기라서 그렇구나 생각했다. 체크인을 완벽하게 마치고, 짐을 부친 후에 이제 출국 심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샤를드골에서 난생처음 보는 어마어마하게 긴 줄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공항의 2 터미널 왼쪽 끝 편에서부터 시작해서 출국심사대까지로 이어지는 길이였다. 그때 딱 출국까지 2시간 남은 상황이라서 어쩌면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줄이 줄어드는 속도를 보니 이건 백 프로 비행기 놓치겠다는 싸늘한 직감이 들었다.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한 후, 남편은 곧바로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앞에 서있던 직원들에게 향했다. 약 20분 즈음 흘렀을까 출국 대기줄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마침 남편이 전화가 와서 최대한 빨리 출국심사하는 곳의 입구 쪽으로 뛰어올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난 비행기를 놓치기 싫었기에 전화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남편이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도착했다. 그리고 무사히 출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보딩시간에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하필 그 시간대에 자동출국심사기계가 고장 난 것이었다. 10개가 작동돼야 하는데 2개만 작동되는 상황이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줄을 선 것이었다. 이런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여기 살다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남편이 이러다간 비행기를 진짜 놓칠 것 같아서 지나 가던 직원들을 붙잡고 우리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비행기 놓친다 혹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겠냐고 했을 때 그냥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세 번 다 거절을 한 것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직원을 만났을 때, 직원이 감사하게도 사이드 쪽에 길을 터줘서 무사히 출국심사 후 늦지 않게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째보면 정해진 매뉴얼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의 덕을 본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사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언제나 양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무조건 좋은 것이란 없고, 무조건 나쁘란 법은 없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고 또 장점만 있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에 누군가를 바라볼 때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도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단점으로 인해서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언듯 내비치는 장점이 단점을 덮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 저런 장점이 있었구나. 역시 영원한 단점이란 없고, 나 또한 양면을 가진 사람이겠구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