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독자
나 독자. 나, 독자라.
우연히 이곳에 내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몇 달 전에 발견했다. 순간 '푸훗' 비슷한 피식 웃음을 내놓았지만 조금은 황당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연히. 순전히 우연히 마련된 공간이라고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내게 덤벼들 거다.
"웃기지 마시오. 당신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노렸을 것이 분명하오. 분명히. 언젠가부터 플랫폼 '다음'의 문이 열리면 눈에 띄는 창이었을 것이 확실한 '브런치 스토리'. 보아하니 당신의 생은 글을 쓰거나 읽는다는 것에 인연이 좀 있는 생인 듯싶고, 하여 이곳에 올려진 몇 글을 읽었을 테고."
"글의 시작을 보니 당신은 천연 욕심쟁이이구려. '마련'이라니, '내 공간'이라니. 당신 속마음을 내놓고 드러내지 않은 문구들, 살짝 음흉함이 묻어나오. 현실 도피적 성향도 느껴지고요. 그리고, 아, 꼴에(이 거친 낱말의 사용을 살피시라, 부디.) 글을 좀 쓰겠다 나대는 섣부른 이. 당신은 분명 그런 식의 일상을 추구하는 아류에 속한 듯싶소. 글을 쓰기는 쓰되, 읽기는 자주 읽되 어설픈 사람. 늘 용기백배하지 못하여 자신의 가슴을 치는 사람. 그렇지 아니하오?"
"그러하니, 알겠으니 부디. 이것저것 어찌 검은 우산을 만들어 펼치고는 숨으려 들지 말고, 나오시오. 어서 나오시오. 나서시오. 어서 나서시오. 쓰시오, 어서 쓰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당연한 길 왔다고 여기고 부지런히 쓰시오."
"어서 오시오. 반갑습니다."
'나 독자'라는 구절을 확인하고 글을 시작했다가 내가 마침내 듣고 싶은 말들을 나열해 봤다.
'나 독자'. '나 독자'라. 얼마 전 얼떨결에 이곳을 찾았다가, 어느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발견한 이름 나 독자. 풀풀 웃음 흘리고 이곳 출구를 바삐 찾아 나섰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잊었다. 나는 너무 바빴다. 당시 때는 나의 일터 특성으로 딱 바쁜 '그때'였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 또 어느 글에 댓글을 달다가 새삼 발견한 나의 필명(?)에 너털웃음을 거나하게 펼치고서 드디어 글을 쓴다.
'커피 한 잔에 글을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글을 쓰려고 이곳 문을 여니 위 문장이 있다. 불행히도 나는 이 밤에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소화불량을 겪고 있어서,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녀석과 일상을 동행하고 있어서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글쓰기를 하기에 좋은 저녁. 자정으로 치닫고 있는 시각이다. 그래, 글 쓰기에는 아주 좋은 저녁이다. 긴 장마, 그 끝으로 가는 지점인지라 오늘 저녁은 습도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 독자라고 해도 될까. 그럴싸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멋진 필명을 올리려고 편집 창을 열었다가 몇 번 입 안에서 읽기의 방법으로 읽어보니 나 독자도 괜찮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져서 나에게 선물이라 여기고 이를 받아들이고 싶다. 운명처럼 온 이름. 나의 분신, 나의 기호, 나의 필명으로 삼고자 한다. 내일 심심치 않게 도착하는 '브런치 스토리'님의 쪽지에 묻기를 이용하여 확인해야겠다. ‘나 독자’라는 필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은데 괜찮은지.
오늘 날짜를 시작으로 나도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일단 기쁘다. 사실 오늘 아침 '제10호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작 10권'의 출판 소식을 쪽지로 받았다. 열어서 확인했더니 내가 쭉 읽어냈던 글이 서넛 보였다. 솔직히 말한다. 쪽지를 열어 대상 작품 몇의 소개 글을 읽고 했던 나의 다짐은 이러했다.
'나도 언젠가는 꼭 이런 쪽지 속 알리는 내용의 당사자이자 북 출판 대상 작품의 주인공이 될 거야.'
장마 속 한여름 밤이 마냥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