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크릴화로 '해바라기 2'를 그리면서
지난해였지, 아마. 점심시간이었다. 나른했다. 직종의 특성상 나 자신에게 낮잠을 허락할 수 없었다. 잠깐 눈붙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보호 아래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천사가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팀 운영 공간에서 일회용 믹스커피를 타서 내 실내 주요 활동 공간으로 복귀했다. 이 닦기는 했던가. 내 직업은 종일 어느 한순간 1밀리의 개인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지나친 표현인가.
내 활동 공간은 퍽이나 넓었다. 실내외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내 천사들은 활동하는 공간이다. 점심시간이면 오전 내 붙박이처럼 앉아 지내야 했던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었다. 실내외로 나누어져 활동했다. 나는 눈 동그랗게 뜨고 실내 공간에서 점심 후 여유 시간을 즐기는 천사들에게 우선 집중했다. 분위기를 잘 살핀 후 두 눈 가늘게 뜨고 유리창 밖 실외 공간 활용형 천사들에게도 수시 보호자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실내 공간은 3층이었다.
“하하하”
“야~ 내 거야, 이리 줘~”
“너, 아까 왜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화났어? 그렇다면 미안~”
실내 활동형 천사들의 움직임이며 내놓는 문장들은 대체로 참 고왔다. 그들은 내성적인 친구들 혹은 친한 친구들끼리 오순도순 모여 노는 취향이다. 주로 손놀림이나 대화로 시간 보내기를 즐긴다.
실외로 개방된 창가로 가 섰다. 밖을 내다보았다. 왕방울 내 두 눈망울이 옆으로 길게 늘여지면서 옆으로 긴 직사각형이 된다. 곧 위아래 눈꺼풀의 끝이 겹칠 만큼 늘어진다. 두께가 얇은 단추가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된다. 끊임없이 실외 공간을 뛰고 내달리는 천사들의 움직임에 나는 안정된 호흡을 유지한다.
두 눈을 원상복구 시킨다. 동그란 내 두 눈동자, 시선의 위치를 바꾼다. 창 아래 수직으로 내리꽂는다. 건물에서 50여 센티미터 떨어진 채 옆으로 길게 화단이 있다. 각종 화초가 군집으로 산다. 군데군데 의젓하게 대표 역할을 하는 듯 서 있는 굵직한 몸체의 나무들 아래 옹기종기 자라고 있다. 울긋불긋 참 곱고 이쁘다.
시야에 바로 들어오는 화초가 있었다. 눈을 오른쪽으로 30여 각도를 돌리면 밭을 이루고 있었다. 노랑과 주황을 합한 화사함의 파티였다. 화초들의 대장인 듯 키가 컸다. 위에서 내려다봐도. 올곧은 줄기가 곧추서 있었다. 화초치고는 대단히 튼튼하다는 증거이다. 높이 100cm는 능히 넘는 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분 후 쫑알쫑알 무대 뒤 화음으로 자기네들의 존재를 드러내던 이들이 있다. 소리 모음 부피가 커지면서 곧 내 시야에 들어왔다. 화단 넘어 드넓은 바깥을 뛰고 있는 나의 천사들에 비해 훨씬 어린 천사들이었다. 유치원생들이었다. 무리 지어 꽃잔치를 즐기러 온 듯싶었다. 아마 선생님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 인가 보다.
나는 아마 시 한 편을 읽고 있었을 거다. 문태준의 시였을까 아니면 기형도의 시였을까. 김승희의 ‘태양미사’를 읽었을 수도 있다. 이 세 시인의 시는 곁에 두고 늘 읽는다. 식은 커피를 홀짝 한 모금 마신 후였다. 내 옆에 와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천사 ‘ㄱ’에게 듣고 판단하라는 듯, 아니 혼잣말인 듯 말했다.
“내 애들도 저리 귀엽고 예뻤을 텐데~”
문장을 끝내면서 재빨리 후회했으나 내 경솔함은 이미 ‘ㄱ’에게 전해진 후였다.
“에이 참, 우리 지금도 귀엽다고요. 우리 미워요?”
나는 미처 눈높이에 맞는 대화의 탄력성을 생각하지 못한 채 망언을 마구 풀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냐 아냐, 이뻐. 이쁘고말고. 물론 최고로 귀엽고. ‘아흥 어흥’ 하고 애교를 부리면 내가 그만 홀딱 넘어가고 말잖아. 미안. 내가 잘못 말했다. 잘못했고말고!”
“그렇죠!”
다행히 문장 오발탄 장면의 불협화음은 금방 해소되었다. 다시 화단에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그곳 어여쁜 꽃밭 앞을 여전히 유아 천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조금 전에 읽은 시의 문구보다 선생님의 고운 목소리에 담긴 음의 편안함이 나를 이끌었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ㄱ’아, 이리 와 봐. 네가 참 좋아한다는 꽃이 여기 있네. 이 꽃 이름이 뭐더라? 크게 말해 보세요. 점심 먹었으니 씩씩하게 말할 수 있지요?"
기대했던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요했다. 친구들이 서로를 돌아보면서 'ㄱ'을 찾고 있었다. 'ㄱ'은 한눈을 팔고 있었다. 무리와 떨어진 채 화단 아래 넓디넓게 펼쳐진 공간에서 공을 차는 형들에게 집중해 있었다.
“야, 너, 'ㄱ'아, 'ㄱ'아아~. 선생님이 너 불렀어!”
서너 친구들이 달려가서 양팔을 흔든 다음에야 'ㄱ'은 화단 쪽 동료들에게 눈을 돌렸다. 투다다다 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3층까지 급박하게 들렸다. 잠시 후 선생님 옆에 선 아이 'ㄱ'이 두 손을 목에 올려 어루만지고 달래면서 거친 호흡으로 말했다.
“뭐요, 선생님?”
“우리 'ㄱ', 저 꽃 좋아하잖아. 저 키 큰 꽃. 'ㄱ'처럼 꽃도 크고 키도 제일 크고! 이름 한 번 크게 외쳐보세요!”
"해, 해바라기요."
아직 숨쉬기가 고르지 못한 ‘ㄱ’이 3층에서 가까스로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래 해바라기이지. 근데 해바라기는 어떻게 자라더라? 저번에 ‘ㄱ’이 좋아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가르쳐줬는데~”
'ㄱ'의 반대편에 선 남자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해바라기는요. 해를 바라보면서 자라요.”
“나도 알아요. 그래서 이름을 해바라기라고 한대요.”
‘ㄱ’이 아닌 다른 친구들이 웅성웅성 속에 각자 아는 것을 이곳저곳에서 터뜨렸다.
"응, 그래, 그렇지.”
선생님이 재빨리 정리하셨다.
“나도 다 아는데~”
들릴 듯 말 듯한 ‘ㄱ’의 말이었다.
“그래, 해바라기가 오늘은 활짝 피었구나. 참 예쁘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건강에 좋다고 해바라기씨를 아침마다 먹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아침마다 견과류 속에 해바라기씨를 합해서 갈아줘요. 그러면 내가 그 가루들을 우유에 섞어 먹어요. 뼈에 좋대요.”
“아하, 엄마들이 대단하시구나. 우리 ‘ㄱ’도 해바라기씨를 잘 먹는다던데, 맞지요? 엄마가 그러시던데~”
“예. 그래요. 오늘 아침에도 먹으면서 학교에 왔어요. 근데 맛은 없어요. 형들처럼 저렇게 축구를 잘하려고 열심히 먹어요.”
“그래, 우리 ‘ㄱ’이 잘 먹고 잘 자라서 꼭 손흥민 선수처럼 되는 거야. 그~”
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면 자란다고 답했던 남아의 오른손이 해바라기 꽃으로 향했다. 재빨리 옆에 서 있던 'ㄱ’이 남아의 손을 홱 잡아채며 말했다.
"만지지 마, 꺾지 말라고! 해바라기가 아프잖아. "
잎의 끝이 뾰족하니 심장 모양의 잎들이 크게 흔들렸다. 혀 모양의 꽃과 관 모양의 꽃이 겹으로 배열된 해바라기 꽃이 미세하게 바람을 일으켰다. 노랑과 주황이 서로 자신을 뽐냈다.
섬 생활을 할 때였다. 잡초 우거진 주요 건물 끝 공터에 해바라기 몇 송이가 자라고 있었다. 해바라기가 여러 해 식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안타까웠던 시절이었다.
해바라기 그림이 인기다. 퇴직 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연필 정밀 묘사를 주로 그린다. 4월 초 후반기에는 해바라기 한 점을 아크릴화로 그려서 지인에게 선물했다. 용기 대단한 행위 후 나는 하늘에 대고 한바탕 웃었다.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아크릴화며 유화를 그린 적이 없었던 나이다. 올 후반기 기회가 되어 화가 선생님의 지도로 아크릴화를 한 점 그릴 수 있었다. 해바라기였다. 나는 그 그림에 ‘해바라기 2’라고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