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솔지라고 했다

- 부추김치를 담으면서

by 나 독자

우리 엄마는 '솔지'라고 했다

- 아래 글 속 남도 방언은 방언 그대로 사용했다.


KakaoTalk_20251218_111335890_01 1.jpg 꽃 핀 부추

느린 오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하루를 살아낸 이들이 몸에 축적된 피로를 고단한 냄새의 나른한 하품으로 풀고 있었다. 시내버스는 개별성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며 행동하는 다중의 피로연이 진행되는 곳. 칠팔십 명이 넘을 듯한 승객들과 기사님과 차장 언니까지. 버스 안에서는 각각의 특성을 담은 냄새들이 적당한 화학작용으로 버무려졌다.


“안으로 좀 들어갑시다.”

출입문 손잡이에 온몸을 의지한 채 내 등을 밀던 차장 언니의 외침.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흘렸다. 틈이 없었다. 가방을 꼭 껴안고 단단한 목석으로 서 있다가 몇 정거장 오르락내리락 리듬을 견디면 됐다. 목석도 땀을 흘린다. 등줄기를 흐르는 끈끈한 액체는 강약을 지닌 곡선으로 겸재 정선의 ‘풍악도첩’을 모사했다.

“들어들 좀 가요, 안으로요. 저 뒤 비어있잖아요. 들어갑시다.”

중대장 정도 분위기의 굵직한 저음이었다. 육중한 몸에서 내뿜는 양자역학이 공간의 공명을 가로질렀다.

“근께 말이요이. 저 뒤에 뭔 일 있는갑소야.”

한 할머니가 중대장을 부추겼다.

“왜 이렇게 빡빡할까? 이렇게까지는 아닌데.”

중대장의 부연을 할머니가 받았다.

“아자씨가 한 번 들어가보쑈야.”


아자씨가 한복판으로 진출했다. 부대원을 양옆으로 갈랐다. 신을 영접하듯 고요를 장착한 길이 뚫렸다. 이상한 것은 아자씨가 몇 걸음 나아가다 멈췄다는 것이다.

“어이쿠, 이게 뭔 일이요? 아줌마, 그 큰 보따리를 안고 버스를 타셨어요? 이 시간에는 택시를 타야지요.”

적막강산이었다.

“이리 주세요, 저 뒤 귀퉁이에 둘 테니 잊어버리지 말고 가지고 가세요.”

“...... .”

“어디서 내리세요?”

“거, 풍~동. 뭔 백~약국 다음에 내린디요이.”

가까스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때 문 앞으로 옮겨 드릴 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쩌께라이, 바뻐서 딱 이 시간이 되어부렀구만요. 우리 딸 고등학생인디 뭣을 잘 안 먹어서 뼈밖에 없단 말이오. 짐치도 떨어졌을 것인디 어찌까 해서 급히 오느라 이리 되쏘야. 농촌이 지금 무지하게 바쁘단 말이요. 여러분들 죄송하요이. 죄송하요. 글고 아자씨, 진짜 고맙고만이라.”


퉁! 가슴이 내려앉았다. 호흡이 가빠왔다.

‘오. 신이시여.’

나는 차장 언니 등 뒤에 바싹 붙어 서서 눈을 감았다.

“여그서 내릴라고?”

나는 약국 앞에서 하차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윗입술 끝, 사람의 소리가 안구에서 쏟아지는 액체에 의해 죽이 되었다. 녹아내리는 햇볕의 핵 속으로 내 영육을 꼬라박았다.

‘오 신이시여. 부디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마소서. 나를 용서하지 마소서!’

그날따라 버스 속 냄새가 유난했다. 제멋대로 관현악이었다. 나는 뾰족한 후각을 지녔다.

“왜 멸치 젓국 냄새가 나요?”

하마터면 차장 언니에게 말할 참이었다. 피곤한 오후이길 다행이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 나의 대도시 유학 서식처. 방바닥을 보자기가 점령하고 있었다.

약국에서 내렸으니 두 정거장. 일부러 느린 걸음이었으니 대여섯 정거장의 길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따뜻한 흰쌀밥을 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찬은 부추김치였다. 우리 엄마는 ‘솔지’라고 했다.

“아이고. 인자 오냐. 살이 더 빠져부러따이. 어쩌까. 뭣이든지 잔 먹어야지야.”

늘 냉한 막내딸이니 한마디 말이 없어도 그러려니 하셨을 것이다.

“언제 왔소?”

엄마가 와 계시면 꼭 건네던 건조한 문장도 생략했다. 마구 퍼먹었다. 물만밥에 목이 메듯 슬퍼야 할 밥이 왜 그리도 맛있던지. 숟가락 가득 밥을 쌓고 그 위에 손가락을 움직여 부추김치를 한 움큼 얹었다.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치웠다.

“우리 딸 금방 담은 솔지를 을매나 좋아하는지 내가 알지야. 언능 묵어라이. 아, 아니다야. 또 영칠라. 찬찬히 묵어. 시래깃국으로 목 잘 넘겨감서 묵어.”


엄마는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한 채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오르셨다.

이튿날 낡은 솥에서 퍼낸 다 식은 흰쌀밥에 부추김치를 더한 아침을 먹고 등교했다. 경비 할아버지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맞아주셨다.

“이것이 뭔 일? 겨울이면 아직 해도 덜 떴는디? 수녀님이 나오셨을까?”

나는 미션 스쿨에 다녔다.

“괜찮아요. 성당에 갈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네 멋대로 살아보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