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급 30달러 VS 시급 0달러]

`비합리적`이라는 말이 답이 될 수 있는 이유

미국의 한 자선단체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자문해 줄 변호사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비영리단체라 사례는 시간당 30달러밖에 지급할 수 없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런 조건에 선뜻 나서는 변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에 고민을 거듭하던 단체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돈이 아닌 `명예`를 치켜세워주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광고를 했다.

`이 일은 오직 명예직일 뿐 봉사에 대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러자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그 이유는


시간당 30달러를 받으면 C급 변호사 취급을 받지만
비영리단체의 명예직 변호사라고 하면 A급 변호사가 되기 때문이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이런 행위는 경제학적으로는 해석이 안 되지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시간당 30달러면 큰돈이지만

변호사들에게는 아주 작은 돈인 것이다.


그러니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 하면 안 했지 그 돈을 받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변호사들에게는


30달러를 받아서 C급 변호사가 되느니
차라리 무보수로 일하면서 A급 변호사가 되는 게 낫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아니면 더 크게 생각해서


자선단체 변호사임을 내세워 더 큰 사건을 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명성을 얻어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라는 더 큰 야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합리적인 사회에서 생각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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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론을 탄생시킨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의 질서가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들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소비를 하면서


당연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라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은 아주 합리적이라고 말하면서
행동하고 있는 행위들도 아주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냐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학위도 받았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논리적으로 한다.


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렇게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만 하는 변호사들이

사회적인 이론이나 이치로 생각했을 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변호사들은 결단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변호사가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면서 그 너머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합리적으로 작동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상품들이 잘 팔리고
명품은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이런 현상은 이성적인 합리적인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또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삯바느질이나 행상을 해서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이나 혹은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쾌척하는 할머니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정작 자신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모은 돈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모습들은


순자가 말한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


는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이런 할머니들의 행위들은 절대로 악한 모습이 아니다. 최상의 선의 모습이다.


어쩌면 순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만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삶 속에는


합리적인 방식으로서는 악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비합리적인 방식으로는 선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아서 선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이성이 아닌 그 무엇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성의 합리적인 방식에 의한 계약에 따라서 개인이나 회사가


눈앞의 위험에 의해 파산할 위기에 있을 때


국가와 사회가 잠시 유예해 주거나, 그 기간을 연장해 주어

회생의 절차를 밟아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판단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의 사조가 형식을 파괴하면서 새로움이 만들어진 것처럼

그래서 이성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저히 아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작품일지라도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비이성적으로 그리고 비합리적으로 그 작품이 가슴에 와닿는다면

그래서 엄청 많은 돈, 즉 10억, 100억, 1000억을 주고 그 작품을 사들였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광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욕해야 할까
아니면 부러워해야 할까?


이런 행위들은

그러니까 할머니가 자신이 번 돈을 누군가에게 기증하는 이런 행위들은

절대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합리적인 이유는

이성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조차 없다.


삶은 때대로 이토록 비합리적인 행위들이 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