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인드 버그 VS 신념]

개인의 `마인드 버그`는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하는 이유

마인드 버그는


인간의 올바른 사고와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으면서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과 고정관념,
자신이 경험한 한두 가지를 가지고 진리인 것처럼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 지하철 역사에서 젊은 남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들은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입상한 유망주들이었다.
그러나 오가는 행인들 중 그들의 연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음날은 외국의 유명한 콩쿠르에서 입상한 천재 음악도라는 선전 문구를 걸어 두고
연주복을 입고 연주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경력에 편견을 보인 것이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사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모두가 겪는 그런 이야기이다.


소위 말하는 `스펙`이 사람들의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스펙이 있는 사람을 좀 더 능력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좀 더 전문적으로 보인다.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의 말은 믿고 따르면서 그저 그런 일반인의 말은 별 볼일 없이 여긴다.


너무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경력과 학위, 스펙 등을 속이는


사기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펙을 보려 하고 자격증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사람들의 속성인 `마인드 버그` 때문이지만

현대에는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마인드 버그`는 신념이 될 수도 있고 편견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처칠과 히틀러 두 사람이의 제2차 세계대전을 임하는 정신


처칠은
히틀러와의 유화론을 배격하고 단호하게 전쟁 불가피론을 주장하는데
히틀러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신념으로 전쟁에 임하였고

히틀러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독일 민족을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것은 공산주의자들과 유대인들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들을 잡아 죽인 것이다.
심지어 유대인과의 혼혈은 독일인의 비극이고 인류의 비극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전쟁에 임하였다.

결국 독일은 패하게 되고 처칠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처칠의 전쟁에 임하는 정신이 더 대의적이고 명분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처칠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였기에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전쟁에 임하는 정신은 한쪽으로 편향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판단이므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정신 중 당연히 처칠의 정신이 승리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처칠의 선택도 잘못된 것일 수 있었다.

당시의 전쟁의 상황이 영국에 유리한 것만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처칠의 선택은 바람일 뿐 실제로 히틀러를 이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처칠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처칠의 `마인드 버그`가 승리한 것이다.


처칠의 마인드 버그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의적이고 당위성을 자극했기 때문에
처칠의 마인드 버그는 편견이 아닌 `신념`이라 불리게 된 것이고

히틀러의 마인드 버그는 개인적인 고집이고 내로남불격인 믿음이고
상대방에 대한 미움에 대한 정신이므로 히틀러의 마인드 버그는 `편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만일 처칠이 히틀러에게 패했다면
처칠의 마인드 버그는 `편견`이었다고 말할 것이고
히틀러의 마인드 버그는 `신념`이었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마인드 버그`는 명분이 있고 대의적이라면 `신념`이라 불리게 되고

명분이 없고 개인적이라면 `편견`이라 불리게 된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처칠과 같은 정신이 발휘되어야 하겠지만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처칠과 같은 정신은 너무나 극단적이고 가혹한 선택이 될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마인드 버그`


개인과 개인의 마인드 버그는 나라와 나라의 경우와는 다르다.


개인 간의 관계는 상대방이 아무리 편견을 가지고 자신만의 입장만 말하고 있고

`나`는 항상 객관적이고 옳게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그 상대방을 끝까지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여지가 없게 된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의 신념, 인성 등과는 관계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공격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쥐도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뒤돌아서서 공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가 키맨이 되어서 상대방을 다독거려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양보만 하게 된다면 `나`는 상대방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상대방을 대하는 `정도`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과정이고 인내력을 요구하고 어쩌면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다.


악의가 없는 상대방이라면


`나`가 상대방이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상대방은 자신의 '마음의 쇠사슬'을 풀 수 있도록 힘을 빼고

움켜잡고 있는 것들을 놓아보는 것이 전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악의가 있는 상대방이라면


`나`는 끝까지 상대방을 다독여보든지 아니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만일


'나'가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포용하고 다독인다면
'성인'이거나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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