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성장`이 아닌 '이대로'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함정이다.
물론 성장이 없었으면 원시시대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다.
지금의 시대는 모든 것이 넘쳐난다. 부족한 것이 없는 시대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성장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성장이다.
지금의 삶의 수준에서 인간이 하기 싫고 더럽고 추하고
그러면서 일상적인 행위를 대신해 줄 기계 곧 AI를 만들고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과연 이런 일상생활에서의 추악하고 무의미한 행위들을
없앤다면 우리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정도의 수준에서는 '성장'보다는
'이대로'라는 수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행복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곧 역사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의미가 된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은 우리의 생화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세로토닌 분비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세로토닌 수준을 바꾸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중세 프랑스의 농부와 현대 파리의 은행가를 비교해 보자.
농부는 돼지우리가 내려다보이는 진흙 오두막에서 난방도 없이 살았다.
하지만 은행가는 샹젤리제가 내려다보이는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서
각종 최신 장비를 완비해 놓은 채 살고 있다.
당신은 즉각 기업가가 중세 농부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진흙 오두막이나 펜트하우스, 샹젤리제가 우리의 기분을 결정짓지 않는다.
세로토닌이 그렇게 한다.
중세의 농부가 자신의 진흙 오두막을 완성했을 때,
뇌의 뉴런은 세로토닌을 분비해 행복 수치를 10으로 올렸다.
2014년 이 기업가가 멋진 펜트하우스의 대금을 모두 치렀을 때
그의 뇌에 있는 뉴런은 농부와 비슷한 양의 세로토닌을 분비해 역시 10으로 수치를 올렸다.
펜트하우스 최상층이 진흙 오두막보다 훨씬 더 안락하다는 사실은
뇌에 아무런 차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뇌가 오로지 아는 것은 현재 세로토닌 수치가 10이라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중세의 가난한 농부보다 조금도 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출판-
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을 이루더라도 과거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의 관점에서 성장이 완전히 관계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멈추는 것이 아닌
`이대로`를 실행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공장과 인류를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AI 기술 등을
잠깐 `이대로` 두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가
독점과 세금 우선권, 로비 집단,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어떤 경제 일원에게 늘어나는 "특권"은
경제 체제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출처] 위키백과
고 말한 것처럼
창출된 부를 `어떤 경제 일원`에게 무조건적으로 축적하는 것은
경제의 흐름을 막는 것이므로
`어떤 경제 일원`에게 축적되어 있는 자본을
부족한 자본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이대로`의 경제에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기울어진 저울을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쏠려있는 그 무엇을 다른 한쪽으로 옮기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이대로`의 경제를 실행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이고
지금 현재 우리에게 산적해 있는 문제점들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지금 우리가 양 떼를 들판에서 풀을 먹이고 있는데
저쪽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 상황에서
양들이 여기 있는 풀을 다 뜯어먹어서
낭떠러지 부근의 풀을 양들이 먹으려고 가고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당연히 양 떼를 막아서 다른 길로 인도할 것이지 않은가.
양치기는 잠시 `이대로` 있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른 대안으로 다른 먹거리 장소를 찾아서 이동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지금 우리들이 할 일은
지금 잠시 `이대로`있으면서 국내적인 상황과 국제적인 상황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국내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자기 성장을 위한 창의적인 체계를 이루어서
만족하게 살고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국제적인 관계에 따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자신의 나라가 살기 위해
말하자면 핵의 위협과 주변국과의 힘의 균형관계에 의해 전쟁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속해 있는 나라만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현실이 전 지구 인류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쥬라기 공룡시대, 제국에 의한 식민지 시대, 냉전시대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현재 '세계화'된 상황에서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과거
유목민들이 사냥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고
인간들이 농사를 지으며 한 해 한 해 먹고살았던 것처럼
이 정도의 기술에서 이룩한 파이를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전쟁을 당한 국가가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친 파이를 조금만이라도 분배를 한다면
비옥한 내 땅의 자원으로 상대방을 휘어잡지 않고 나누면서 산다면
진정한 `세계화`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성장`의 경제가 아닌 `이대로`의 경제를 실현할 때이다.